北 6차 핵실험, 중국도 움찔했나…“사드 만큼 북핵도 위협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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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도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못지않다.”

중국에서 열린 비공개 토론회서 # 中 북핵 기류 미묘한 변화 감지 # “꼬리가 머리 흔들어선 안돼”공감 # 6차 핵실험 여파로 주춤했지만 # 사드 강경론 기조는 여전 # #

“북핵의 위협 요인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지난주 중국 전문가들과 비공개 한·중 안보 전문가 포럼에서 서울의 한 대학교수가 중국 안보 전문가들에게 “중국 안보에 사드와 북핵 가운데 어떤 게 더 위협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나온 답변이라고 한다. 지난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 이전엔 “사드가 중국 안보를 심대하게 침해한다”란 한 목소리를 냈던 것과 미묘하게 달라졌다고 이 교수는 전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사회과학원 등 유수의 싱크탱크·연구기관이 참여하는 크고 작은 한·중 안보 전문가 포럼이 열리고 있다. 비공개 행사에선 중국 측 참석자들의 속내가 여과 없이 표출됐는데, 특히 사드에 대한 발언이 미묘하게 분화되고 있다는 점을 감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난 10일 경북 성주골프장 주한미군 사드기지에서 추가로 배치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발사대 시설에 대한 보강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 10일 경북 성주골프장 주한미군 사드기지에서 추가로 배치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발사대 시설에 대한 보강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프리랜서 공정식]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에서 ‘핵보유국’ 북한의 부상에 따른 역내 안보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는 반응도 나왔다고 한다.

또 다른 한국 측 참석자가 “증시에선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시장이 상승하고 꼬리가 머리를 흔든다는 말 있다”고 운을 떼자 중국 측에서 “중국 격언에도 꼬리가 머리를 잡아먹는 꼴이라는 말이 있다”며 호응한 일도 있다. 6차 핵실험 이후 기정사실화된 사드 배치를 놓고 더 이상의 대치는 상호 부담이 크니 이쯤에서 멈추는 게 어떠냐는 제안에 화답한 격이었다.
이 토론에 참석한 중견 국제정치 학자는 “베이징보다는 상하이 등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좀 더 유연하게 이 사안을 대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6차 핵실험 전과 비교해 미묘하게 결이 다른 얘기들이 나와 토론에 활력을 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드 강경론을 폈던 학자ㆍ전문가 그룹의 압박 기조가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라는 게 참석자들의 중론이다. 사드로 인한 경색 국면은 여전하며 중국은 북핵 문제의 해법으로 여전히 쌍중단(한미연합훈련ㆍ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쌍궤 병행(비핵화ㆍ북미 평화협정 체결)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베이징 지하철에서 한 청년이 '사드 반대'라고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 [사진 인스타그램]

중국 베이징 지하철에서 한 청년이 '사드 반대'라고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 [사진 인스타그램]

중국 측 인사는 “우리의 안보에 구멍을 내는 사드를 배치하면서 중국의 핵심 대북 레버리지인 원유 공급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게 상식에 맞나”라고 공세적으로 나왔다고 한다. 다른 참석자는 “북한 핵문제가 최악의 상황까지 온 가장 큰 이유는 한ㆍ미의 이기적 안보 우선주의 때문”이라며 “한·미가 북한의 안보 우려에 눈감고 적대시 정책을 폐기하지 않는 한 북핵 문제는 미궁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불만을 쏟아냈다. 한ㆍ중간 인식의 격차와 상이한 접근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대북 원유 공급 전면차단은 중국의 레드라인이라며 어떤 상황 변화가 와도 수용할 수 없다는 강경론도 여러 차례 제기됐다고 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제4차 청년동맹초급단체비서열성자대회 참가자들과 기념촬영을 한 뒤 손을 흔들고 있다. 이 사진을 보도한 조선중앙통신은 촬영 일자와 장소를 밝히지 않았다.[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제4차 청년동맹초급단체비서열성자대회 참가자들과 기념촬영을 한 뒤 손을 흔들고 있다. 이 사진을 보도한 조선중앙통신은 촬영 일자와 장소를 밝히지 않았다.[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의 최종 목표를 두고 ‘대남용이냐, 대미용이냐’ 논란이 있었지만 중국 측 참석자들은 일관되게 체제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대미 협상 카드로 인식하고 있었다. 베이징의 연구기관의 한 인사는 “북한의 핵ㆍ미사일 보유 목적은 미국과의 적대적 관계를 끝내고 북미수교를 달성하는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중국의 안보에 위해 요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반면 사드 배치는 중국의 핵심 이익인 미ㆍ중 전략적 핵균형을 무너뜨리는 직접적 안보 위협이라며 한중 관계의 경제적 기대 가치에 비해 안보 리스크가 커지는 형국을 중국 당국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취지의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우리 측 참석자는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대(對)한반도 인식이 극단적으로 보수화될까 우려스럽다”며 “특히 한ㆍ미ㆍ일 3국 안보협력이 강화될수록 이에 상응해 중ㆍ러 전략협력을 상향시키면서 북한의 지정학적 비중을 크게 인식할 수 있어 대중 외교가 지금보다 더 큰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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