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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내며 모이는 사람들, ‘배움’ 코드 있어야 모임도 뜬다

중앙일보

입력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남의집 프로젝트'. [남의집프로젝트 홈페이지 캡쳐]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남의집 프로젝트'. [남의집프로젝트 홈페이지 캡쳐]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주택 거실은 2~3주마다 한 번씩 간이 도서관이나 영화 상영관이 된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고 토론도 한다. 지난달에는 '홍상수를 위하여'라는 독립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저작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감독에게 상영 허가도 받았다. 거실이라 해도 나름의 공공장소 역할을 한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30대 직장인들 '배움'을 키워드로 하는 모임이 주목받고 있다. 소그룹으로 모여 각자의 경험과 지식을 나눈다. 연희동 '남의 집 프로젝트'는 SNS를 통해 도서관, 미술관 등의 컨셉을 잡아 낯선 사람들이 모인다. 회당 참가비는 만원이다. 이 모임에서 '문지기'로 불리는 김성용(35)씨는 "거실이란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적은 돈이라도 벌면서 재밌는 일을 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 집에 놀러올 사람들을 SNS로 모아보자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멘토링으로 시작했다가,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모임, 영화 보는 모임 등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음악을 잘 아는 이의 집에 모여 음악을 듣는 모임과 독립출판사를 꾸리는 일을 하는 이를 초대해 출판 과정이나 노하우를 공유하는 모임 등도 기획하고 있다.

돈을 내더라도 만남과 배움이 있는 모임에 참석하려는 이들은 늘고 있다. 독서모임 스타트업 '트레바리'는 3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정기적으로 책을 읽고, 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지난 2015년 9월에 4개 클럽, 80명의 회원으로 시작한 트레바리는 이달 기준으로 100여 개의 클럽이 있고, 클럽당 1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4개월 단위로 멤버십을 판매하는데, 19만~29만원이다. 모임은 클럽장이 있는 모임과 없는 모임으로 나뉜다. 문학모임은 소설가나 시인이 클럽장으로, 부동산모임은 애널리스트가 클럽장으로 활동하며 지식과 경험을 공유한다. 독후감 등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면 모임에 참여할 수 없다.

트레바리의 윤수영(29)대표는 사람들이 돈을 내고 모임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독서모임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재밌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데 막상 하려면 시간적, 감정적 여유가 필요하다. 트레바리는 내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는 대신 돈을 내고 모여 편하게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 배우는 기회를 제공한다. 집에서 혼자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대신 헬스장에 가는 이유가 있듯, 강제성을 부여해 끝까지 함께 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프립'에는 다양한 모임이 소개돼 있다. [프립 홈페이지 캡쳐]

'프립'에는 다양한 모임이 소개돼 있다. [프립 홈페이지 캡쳐]

모임을 '쇼핑'할 수 있는 SNS 플랫폼도 등장했다. 소셜엑티비티 플랫폼 '프립'이 대표적이다. '프립'은 SNS와 학원이 결합된 형태에 가깝다. 아웃도어·스포츠·문화·예술·요리까지 모임의 종류도 다양하다. 현재 프립에는 '스쿼시 원포인트 레슨'부터 '나만의 칵테일 만들기', '취직&이직 타파' 등 개인 관심사에 따른 모임만 수십개가 존재한다. 지난 5월 ‘프립’의 사격 모임에 참석한 직장인 하모(25)씨는 "원하는 모임을 선택해, 평소에 하기 어려운 걸 배울 수 있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새로운 걸 배워보고자 참여했다"고 말했다.

뭔가를 배우려 돈을 써가며 소그룹 모임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의 모임이나 동호회는 자발적이고 비금전적인 측면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생존이나 커리어 관리, 네트워킹에 대한 필요가 커져서 이런 모임이 뜨고 있다"며 "교육 기회는 턱없이 부족하고, 현장에는 수요를 충족할만한 모임이 많지 않아 개인들이 돈을 내고서라도 참여하는 것이다"고 평가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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