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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새미 라샤드의 비정상의 눈

잡초 뽑을 젊은이 없는 슬픈 농촌 현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새미 라샤드 이집트인·JTBC ‘비정상회담’ 전 출연자

새미 라샤드 이집트인·JTBC ‘비정상회담’ 전 출연자

지난달 외국인 유학생들의 농촌 돕기 활동에 참여했다. 농사일을 도우며 나누는 이야기가 수준 높다. 인생에 도움 되는 이야기를 한다. 고국에서 논밭에 들어가 본 적도 없는 학생도 있지만, 농촌 봉사하러 온 이유를 물어보면 가장 흔한 동기는 ‘농사가 중요하니까 꼭 하고 싶어서’다. 다른 참가자들은 공학·의학·수학 등 과학 전공자다. 나는 언어 전공자라 밭에서나 식당에서 통역도 하게 된다. 봉사하러 온 유학생들이 공통으로 궁금해하는 게 있다. ‘젊은 자식들은 농사일을 돕지 않고 어디 갔느냐’는 의문이다.

4년째 해온 활동이다. 해마다 농촌에 가면 행복과 보람을 느끼지만 마음 아플 때도 있다. 올해 우리 팀은 밭에 나가서 풀을 밟는 일을 맡았다. 잡초를 뽑아서 버리지 않고 밟기만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늙은 농부 아저씨께 여쭤봤다. 그는 “젊은 학생이 힘 세 보일지 몰라도 가슴까지 자란 잡초를 뽑는다고 온종일 열심히 해야 반도 못할 거예요”라고 답했다. “잡초가 막 뿌리 내릴 때 뽑으면 되지 않나요”라고 물었더니 아저씨는 “일손이 없어서 그렇게 됐어요”라며 한숨지었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 가는 길에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말씀. “힘들어요. 학생들도 봤듯이 일할 사람 없어서 맨날 일이 더뎌요. 정부가 도와줬으면 하는데 그게 안 돼요. 나중에 농사가 잘 안 돼서 먹을 거 없어지면 어떻게 할 건데···. 밖에서 사 오면 맛도 없고 비싸요. 젊은 친구들이 미래가 없다고 다들 서울로 도망가잖아요.” 그동안 가슴에 쌓인 얘기를 외국인인 나에게 한꺼번에 털어놓으신 것 같다. 우리 집은 친조부·외조부가 농사만 짓고 사셨기에 와 닿는 이야기였다.

아저씨 말씀은 이런 내용인 것 같다. 농사는 한 사람이 기계 10대를 갖고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농사는 여러 명이 하는 일이다. 요즘 한국에서 귀농 인구가 늘고 있지만 농촌이 진정한 변화를 이루려면 젊은이들이 즐겁고 보람 있게 살 만한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속말을 다 털어놓은 아저씨가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농사는 일상의 비유적인 표현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친근한 존재다. ‘사람 농사’ ‘자식 농사’ ‘일 년 농사’ 등···. 그런데 정작 진짜 곡식 농사에는 관심 없는 현실이 슬프다.

새미 라샤드 이집트인·JTBC ‘비정상회담’ 전 출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