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처한 한국의 방위산업, 보고만 있을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현재 한국 ‘방위산업’(防衛産業, 이하 방산)이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방산 종사자들의 사기 저하다. 방산 선진국들에 비해 부족한 기술, 예산, 일정의 제약 속에서 힘들게 개발한 무기체계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각종 언론에서는 결함투성이로 매도하거나, 아니면 엄청난 비리가 있는 것처럼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 결과 방산 종사자들의 사업추진 의지와 의욕이 자연스럽게 꺾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로벌 방산업계의 위계질서에서 상위층(First Tier)에 속하는 선진국들(예: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 등)은 방산을 국가의 ‘공장’으로 인식, 정부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보호ㆍ육성ㆍ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개발과정에서 다소 문제가 발생해도 그것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발 이후 시험평가, 생산ㆍ납품, 그리고 야전 운영과정을 거치는 동안 수정ㆍ보완해 나가면 된다는 인식을 갖고있기 때문이다.

항공모항에서 수직으로 비행기를 띄우려는 F-35 전투기 [사진 록히드마틴]

함공모함에 수직으로 내려앉는 F-35 전투기 [사진 록히드마틴]

일례로 미국의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 개발사례의 경우, 예정된 일정보다 무려 6년(기존: 2001~2012년 → 변경:  2001~2018년)이나 지연되었다. 그 이유는 실험적인 차원에서 新기술 적용을 많이 하다 보니 예상하지 못했던 각종 문제들이 많이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그 대표적인 문제들이 엔진결함, 오일유출, 사출좌석 결함, 기체균열, 엔진화재 등이다.

F-35의 개발 지연으로 개발비가 증가(344→ 551억 불)했고 획득비도 증가(1,966→3,191억 불)했지만, 미국 정부는 F-35 전투기의 개발과 병행해서 초도생산(LRIP: Low Rate Initial Production)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F-35의 첫 생산물량인 초도생산기간은 2006년~2018년인데 2016년까지 200대를 생산해 납품했다.

그러나 한국은 어떤가. 무기체계의 야전 운용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개발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 하나만 가지고도 온갖 잣대를 들이대면서 개발업체들에 대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 일례로 풍산은 2013년 세계 최초로 두꺼운 철판을 뚫고 들어가 폭발하는 철갑탄 개발에 성공했지만, 정부의 제시 기준을 완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개발금(10억 원) 환수 및 입찰제한 처분을 받았다.

현대로템은 세계 최고(55m)에 근접한 53m급 교량개발에 성공했으나, 군 목표치(60m)에 미달해 200억 원의 예산을 환수 당했다. 이 과정에서 방사청은 현대로템의 개발노력을 감안해 입찰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지만, 감사원이 나서서 방사청에 제재를 가했다.

이런 사례들은 방산 종사자들, 특히 연구개발 종사자들의 개발 의지를 한 순간에 꺾어버리는 너무나 과도한 조치들이라 할 수 있다. 정부가 이렇게 돈을 환수하고 제재를 가해 개발 사업을 중단하면,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엄청난 피해가 초래될 수 밖에 없다. 일례로 방산업체가 축적한 기술은 사장되고, 해외에 기술을 수출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정부의 방산정책 목표가 보호ㆍ육성인가?, 아니면 규제인가? 만약 정부가 방산을 보호ㆍ육성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방산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최우선적으로 바꿔야 한다. 즉 방산은 국가의 ‘공장’이라는 인식을 먼저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인식 하에 방산을 보호 및 육성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ㆍ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실행에 옮겨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 실행 방법으로 첫째, 정부(국방부ㆍ방사청ㆍ각 군 등)와 방산업체 간 소통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우선 방산업체가 정부의 획득 및 방산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2018-2022 방산육성기본계획 수립 및 전력증강 10년 평가』를 통한 국방부 획득시스템 개선에 방산업체 참여가 필요하다. 공개할 수 있는 사업 관련 정보를 방산업체에 제때 제공하거나, 방산정책 수립 시 방산업체가 제시한 발전방안을 정부차원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그리고 각종 회의, 심포지엄, 간담회, 컨설팅과 교육, 전시회 등을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정부의 어려움과 방산업체의 고통에 대해 상호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여 나갈 필요가 있다.

둘째, 국방분야 핵심기술 연구개발 사업에 적용할 예정(2017년 9월)에 있는 ‘성실수행인정제도’를 무기체계 연구개발사업까지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무기체계 연구개발사업은 군의 높은 요구성능(ROC) 때문에 개발과정에서 시행착오를 너무 많이 야기하고 있다.

또한, 방산업체가 애초에 설정한 기술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현재 기술수준으로 달성할 수 있는 개발범위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 그런 뒤에 사업이 재개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인정해줌으로써 연구개발 수행의욕이 저하되는 문제까지 발생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

성실수행인정제도는 이런 점을 효과적으로 이뤄지도록 현재의 문제를 개선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 제도를 체계개발사업까지 확대할 경우, 방산 종사자들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국방 연구개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노력을 자연스럽게 기울이게 될 것이다.

셋째, 지체상금 부과율과 한도 과다 문제를 해결하고, 또 계약기간 연장도 필요하다. 외국은 지체상금 부과율이 통상 계약금액의 0.03%/1일, 한도도 계약금액의 10%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국은 지체상금 부과율이 무려 계약금액의 0.15%/1일에 달하고, 한도도 계약금액의 10% 이상으로 너무 과도하다.

특히 일반 무기체계가 아닌, 복합 무기체계(수상함/잠수함 등)의 경우. 국내개발 및 해외수입을 통해 획득ㆍ조달된 수많은 장비를 연동시키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정을 정확히 맞추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따라서 복합 무기체계의 경우에는 일반 무기체계 개발과 다른 지체상금 부과율과 한도 설정, 그리고 계약기간 연장 등의 제도적 장치가 보완될 필요가 있다.

요약하자면, 정부와 방산업체 간의 소통을 활성화하고, 성실수행제도를 채택하고, 지체상금 부과율 및 한도를 하향 조정하고, 또 계약기간을 연장하는 등과 같은 정책ㆍ제도적 조치들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실추된 방산 종사자들의 연구개발 의욕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이런 조치들은 방산비리를 정책ㆍ제도적 차원에서 예방하는데  크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김종하 한남대 정치언론국방학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