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인간을 닮은 식물의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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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나무는 움직일 수 없는데 어떻게 암수가 결합할까.

식물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으므로 동물이나 바람에 의해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진다. 벌.나비와 같은 곤충에 의해 꽃가루받이되는 것을 충매라 하고 바람에 의한 것을 풍매라 한다. 식물에 따라 붕어마름과 같이 물로 꽃가루받이가 되는 것을 수매, 동백나무와 같이 새에 의해 되는 것을 조매라 하지만 이것은 아주 희귀한 경우로 대부분의 식물은 곤충이나 바람에 의해 중매가 이루어져 종족을 번식시킨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이다. 동물은 일반적으로 종족번식을 위해 이용하는 생식기를 신체 중 가장 잘 보이지 않는 아래쪽에 감추고 있지만 식물은 생식기를 가장 잘 보이는 위쪽에 드러내 곤충을 꼬드기고 있다. 사람들은 동물의 생식기는 혐오스럽게 생각하지만 식물의 생식기인 꽃은 그 음액(陰液)까지도 향기로 생각하고 코를 대 냄새를 맡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물분류학자인 스웨덴의 린네는 꽃을 보면서 "가운데 자리에 한 여자(암술)가 드러누워 있고 둘레에 여러 남자(수술)가 둘러앉아 서로 사랑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꽃가루가 바람이나 동물에 의해 암술머리에 닫는 것을 수분(受粉)이라 한다. 이때가 되면 암술의 머리도 화분을 받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처녀가 시집갈 때가 되면 아름답고 얼굴에 윤기가 나듯이 암술의 머리 부분도 꽃가루받이 때가 되면 꽃가루가 발아(싹틈)할 수 있도록 분비물을 분비해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대비한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더라도 아무 꽃가루든지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암수머리나 꽃가루의 표피에는 상대 배우자를 감지할 수 있는 인식물질이 있어 짝을 찾는다. 만약 이러한 인식물질이 없이 어떤 꽃가루든지 받아들인다면 식물의 종의 질서는 파괴되고 모든 식물의 구분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것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식물이 그렇기도 하지만 특히 나무는 야생성이 강하기 때문에 근친결혼을 잘 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한 나무에 암꽃과 수꽃이 같이 있지만 암꽃은 위쪽에, 수꽃은 아래쪽에 있어 바람에 꽃가루가 날려도 스스로 자기 꽃가루를 받지 않는 구조로 돼 있다. 만약 수분이 이루어지더라도 수정과정이나 종자의 발달 과정에서 대부분이 퇴화된다. 종자로 성숙하더라도 종자가 발아돼 어린나무로 자라는 과정에서 대부분이 죽게 된다. 꽃가루받이가 돼 종자가 성숙하기까지의 기간은 나무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이르면 수주에서 늦으면 2년까지 걸려 종자가 탄생한다.

구영본 (국립산림과학원 유전자원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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