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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베스트셀러] 초판은 20일 만에 금서, 80년 ‘서울의 봄’ 맞아 증보판 나오마자 불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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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우상과 이성(2006년판)
리영희 지음, 한길사

1980년 5월

『우상과 이성』이 출간되고 20여 일 지난 1977년 11월 23일, 리영희는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책에 실린 글 24편 가운데 한 편을 제외하면 이미 신문과 잡지에 발표된 글이었지만 『전환시대의 논리』(1974, 창비)에 이은 리영희의 두 번째 평론집이 출간 즉시 주목받는 것을 유신 정권은 좌시하지 않았다.

검찰이 문제 삼은 대목은 지도층 인사들의 일본어 사용 비판, ‘미국과 일본의 경제적 지배’ 운운한 것 등이었다. 리영희는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 끝에 2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80년 1월 9일 만기 출소했다.

바야흐로 ‘서울의 봄’이었다. 80년 3월 『우상과 이성』 수정 증보판이 나왔다. 초판이 출간 20일 만에 금지도서가 되었으니 증보판이 사실상의 초판인 셈이었다. 리영희는 ‘증보판을 내면서’에서 감회를 토로했다. “하늘을 덮었던 짙은 먹구름의 모서리가 뚫리고 희미하게나마 밝은 햇빛이 내리비치기 시작했다. 여러 해 동안, 입을 다물고 누구도 말하려 하지 않았던 사회생활과 인간생활의 진실에 관해서 말이 들려오고 글도 눈에 뜨인다.”
‘서울의 봄’은 ‘출판의 봄’이기도 하였으나 80년의 봄은 유난히 짧았다. 희미하게나마 내리비치던 밝은 햇빛은 곧 닥쳐올 짙은 먹구름에 가려지고 말 운명이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 비소설 부문 1위에 오르고 나서 얼마 뒤, 계엄군의 ‘화려한 휴가’ 속에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택시를 타고 광주로 향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1980년 5월 셋째 주 베스트셀러 (종로서적·중앙도서전시관 비소설 부문 집계)

① 우상과 이성(리영희 지음, 한길사)

② 빛과 생명의 안식처(안병욱 지음, 삼성출판사)=1960~70년대 김형석·김태길 교수와 함께 ‘철학교수 3대 에세이스트’로 통했던 안병욱 당시 숭실대 교수의 또 하나의 베스트셀러.

③ 사랑하며 용서하며(이향봉 지음, 사랑사)=승려 시인이자 수필가로 유명했던 향봉 스님의 에세이집. 이 책 외에 『무엇이 이 외로움을 이기게 하는가』도 인기를 모았다.

④ 밤의 플랫포옴(임선희 지음, 월간독서출판부)=책 제목과 같은 이름의 동아방송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원고를 묶은 에세이집. 저자는 방송작가이자 진행자, 수필가로 활동했다.

⑤ 한국 청년에게 고함(김동길 지음, 한빛문화사)=유신 정권의 긴급조치 발동 이후 연세대 교수직에서 해직당한 저자는 76년 『링컨의 일생』부터 이 책까지 모두 14권의 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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