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데는 없고 휴대폰 수리비만 주세요” 40대 사기꾼 구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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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에 들어선 자동차가 행인을 피해 천천히 주행한다. 골목 가장자리로 걷던 남성이 차가 옆을 지나갈 때쯤 바짝 다가서며 사이드미러에 손을 댄다. 손을 부딪친 남성은 놀라는 시늉을 하며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떨어트린다. 이른바 '손목치기', 합의금을 노리고 가벼운 접촉사고를 내는 사기 수법이다.

박모(40)씨는 이런 수법으로 2015년부터 최소 200명에게 2400만원 이상 받아 챙겼다. 박씨는 보행자를 쳤다고 생각해 놀란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괜찮냐" 물어보면 일단 "괜찮다. 다친 데 없다"며 차를 보냈다. 운전자가 안심하고 차를 몰고 떠나게 뒀다가 잠시 후 다시 쫓아가 "손이나 팔은 괜찮은데 스마트폰 액정이 망가졌다"며 수리비를 요구했다. 박씨가 의도적으로 부딪친 것 같다고 의심한 운전자도 있었지만 분명한 증거가 없고, 요구하는 액정 수리비도 15만원 정도로 큰 금액이 아니라 합의를 봤다. 오히려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자발적으로 20~30만원을 박씨에게 준 피해자도 있었다.

박씨의 상습적인 손목치기 사기는 40대 김모씨 자매가 한 동네에서 두 달 간격으로 같은 사고를 당한 걸 수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하면서 들통이 났다. 경찰은 박씨가 범행에 사용한 계좌에서 2년 동안 거래내역 6300건을 확인했다. 통장에 찍힌 입금자만 900명이 넘었다. 하지만 피해자 다수가 "피해 금액이 작고 지난 일로 경찰서에 왔다 갔다 하는 게 귀찮다"며 진술을 거부해 특정된 피해자는 200명에 그쳤다. 경찰은 특정되지 않은 피해자와 현장에서 현금으로 합의금을 줘 기록이 남지 않은 피해자까지 더하면 실제 피해 규모는 1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씨는 특히 여성 운전자를 집중적으로 노렸다. 경찰에 조사에 응한 피해자 중 156명(78%)이 여성이었다. 또 사기를 치다 만난 운전자 중 마음에 드는 여성과는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고 "AS 센터까지 태워달라" "커피 한 잔 하자"고 접근하기도.했다. 실제로 박씨는 6개월 전 만난 피해자 A씨와 교제하다 경찰 조사로 사기꾼이라는 사실이 들통나 헤어졌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박모(40)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30일 밝혔다. 경찰은 "경미한 사고라도 현장에서 합의하지 말고 보험사에 알리거나 경찰에 신고해 도움 받으라"고 당부했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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