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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현실과 동떨어진 부동산 공시가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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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기환경제부 기자

김기환경제부 기자

부동산 시세(時勢)를 아는 사람은 의아했을 것이다. 지난 25일 관보에 게재한 청와대 고위공직자들의 부동산 목록 얘기다. 관보엔 이렇게 적혀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 서울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아파트 전용면적 134㎡ 11억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 서울 서초구 방배동 삼익아파트 전용면적 140㎡ 7억1000만원.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 :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주공아파트 전용면적 82㎡ 6억5000만원.’

아시아선수촌아파트부터 보자. 시세가 18억~20억원에 달한다. 국토교통부가 2006년부터 실거래가를 공개한 이후 단 한 번도 11억원에 거래된 적은 없었다. 다른 아파트도 시세와 격차가 크다. 삼익아파트 시세는 12억~13억원, 과천 주공아파트 시세는 8억~8억5000만원이다. 해당 기사엔 “관보 가격에 물건이 나오면 당장 내가 산다”는 댓글이 달렸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관보에 현실과 동떨어진 수치가 나온 건 공직자 재산 공개 기준을 정부 공시가격으로 잡기 때문이다. 이 공시가격이 시세의 절반 이하인 경우도 있는 것이 문제다. 공시가격은 재산세·종합부동산세·상속세 같은 세금 부과나 건강보험료 산정,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 공직자 재산 등록 등 60여 개 분야에서 활용하는 기초 통계다. 매년 한 차례 조사해 공시가격을 발표하는 국토부는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이 지난해 67%라고 밝혔다. 박병석 국토부 부동산평가과장은 “부동산은 재화 규모가 크고 경기에 따른 등락이 심하다. 공시가격은 세금·부담금 등 행정 업무 집행을 위한 평균값을 내는 것이라 시세와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거래가 적어 시세를 파악하기 어려운 단독주택은 공시가격과 시세의 괴리가 더 크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팀장은 “공시가격이 시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고급 단독주택이나 대형 빌딩을 가진 부동산 부자에게 세금 특혜를 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공시가격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할 순 없을 것이다. 바뀌는 시세를 매번 반영할 수 없고 그런데도 자주 바꾸면 혼란이 불가피하다. 박선호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조세 저항이 있을 수 있어 (공시가격을) 급격히 현실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시가격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면 세수의 기초 토대부터 흔들릴 수 있다. ‘부자 탈세’를 돕는 통계란 오명도 씻을 수 없다. 조세 정의를 바로 세우려면 현실과 동떨어진 공시가격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김기환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