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수업료로 가족 회사 배불리고도 "예산 없다"며 교직원 수당 6000만원 빼먹은 사립고 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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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은 서울의 한 사립고교 학교장 본인과 배우자·자녀가 연루된 비리에 대해 종합감사한 결과를 발표하며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의 한 사립고교 학교장 본인과 배우자·자녀가 연루된 비리에 대해 종합감사한 결과를 발표하며 "해당 학교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밝혀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학교 법인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급식용 달걀을 시중가의 3배로 사는 등 학교 예산을 부당하게 사용해 물의를 빚은 서울의 한 사립고교(자율학교)에서 또다른 비리 의혹이 나왔다. 이 학교 교장 김모(여)씨가 학교 예산으로 고급 승용차를 마련해 개인 승용차처럼 쓰고, 학교 재단 이사장을 맡은 남편의 출판사 임차료와 공사비 등을 학교 예산에서 지급해온 사실이 추가로 적발됐다.

서울교육청 29일 예술 중점 자율학교 한 곳 감사 결과 발표 #학교장, 학교 예산으로 남편 출판사 임차료 내고 #딸에게 방과후학교 운영 맡기고 수강료 등 횡령 #유치원 실장 맡은 아들에 월급 외 월 200만원 지급 #"예산 부족하다"며 직원 휴가비 등 6000만원 안 줘 #시교육청 "교장 파면, 유치원 실장 해임 등 중징계하라"

앞서 이 학교는 학교장의 차녀가 등기이사로 재직 중인 업체와 방과후학교 위탁 계약을 체결해 비리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방과후학교 운영 지침에 따르면 학교장의 직계 존·비속 및 배우자 등과는 영리 목적의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게 돼 있다.

29일 서울시교육청은 해당 학교에 대한 종합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학교는 예술 중점의 자율학교다. 감사 결과, 학교장의 차녀와 체결한 방과후학교 위탁계약 비리 외에도 남편·장남과 관련된 비리도 추가로 밝혀졌다.

이번 감사는 지난 7월 10~20일 이 학교 운영 전반에 걸쳐 진행됐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김 교장은 자신의 남편이자 학교재단 이사장인 이모씨가 운영하는 출판사 건물 지하를 빌려 학교 예산으로 임차료를 지급해왔다. 학교는 이 공간을 '학교 사료관'으로 불렀으나 폐자재 등이 쌓여 있는 등 사실상 학교와는 무관했다. 학교가 지금껏 이곳에 지급된 임차료와 관리비가 1억30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 밖에도 김 교장은 학교법인이 운영하는 유치원 원장을 겸임하면서 장남을 유치원 행정실장에 앉혔다. 모자는 월급 외에도 ‘기본운영비’ 명목으로 매월 김 교장은 300만원, 아들은 200만원씩 총 2억원을 부당 수령했다.

또 김 교장은 학생들이 낸 수업료가 주 수입원인 학교 예산으로 1억원이 넘는 고급 승용차를 학교법인 명의로 구입한 뒤 자신의 출·퇴근에 쓰는 등  개인 차량처럼 사용했다. 이처럼 예산을 낭비하면서도 교직원들에게는 명절 휴가비와 연차 수당 등의 인건비 6000여 만원을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급하지 않았다.

앞서 제기된 방과후학교 운영 관련 비리도 시교육청 감사 결과 보다 상세하게 드러났다. 김 교장은 방과후학교 운영 지침을 어기고 자신의 둘째딸이 등기이사로서 운영 중인 업체와 방과후학교 위탁계약을 체결해 이 업체에 2014~16년 14억원을 지급했다. 이 업체는 학부모로부터 받은 방과후학교 수강료와 실기 지도비 집행 잔액 등 3억여 원을 반환하지 않고 횡령한 사실도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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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은 감사 결과를 토대로 해당 학교재단에 교장을 파면하고 고교 행정실장과 유치원 행정실장은 해임, 방과후학교 업체와는 계약을 해지할 것을 요구했다. 시교육청은 학교장과 행정실장 등에 대해선 업무상 횡령 등으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또 학교법인의 이사 2명에 대한 임원 취임 승인을 취소하도록 해당 법인에 요구했다.

시교육청 직무감사팀 임영식 사무관은 “감사 결과 이 학교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와 업무상 횡령 등 주요한 비리가 적발됐다. 경찰에 관련자들의 수사를 의뢰하고, 그간 부당하게 집행한 학교 예산 10억7700여만원을 회수하도록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해당 학교가 감사결과 처분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경찰 수사에서 추가로 밝혀지는 비리가 있는지 등을 지켜본 뒤 나머지 이사들에 대한 임원취임 승인 취소 요구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당 학교 측은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횡령·배임 혐의에 대해선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그동안 학교 운영을 잘하려는 의욕이 과했던 것뿐이지 어떤 부정도 저지를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박형수·이태윤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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