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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인종주의, 유대계 ‘골드만 마피아’ 줄사퇴 부르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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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호 15면

게리 콘 NEC위원장 거취 초미의 관심

지난 15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버지니아주 샬럿빌에서 벌어진 백인 우월주의 폭력사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것을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왼쪽)과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가운데)이 지켜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5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버지니아주 샬럿빌에서 벌어진 백인 우월주의 폭력사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것을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왼쪽)과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가운데)이 지켜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머리였던 스티브 배넌 백악관 전략수석이 결국 사임했다. 미국의 국가정체성을 뒤흔든 ‘샬럿빌 백인우월주의자 난동’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읍참마속(泣斬馬謖)을 강요한 셈이다. 샬럿빌이 자리한 버지니아는 미국이 독립을 선언할 당시 13개 주의 좌장으로 건국 이래 대통령 5명 가운데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등 4명을 배출한 아메리칸 데모크라시의 모태라 할 수 있다.

네오 나치 옹호하는 듯한 트럼프에 #경제수석 격인 게리 콘 거취 고심 #사임하면 금융 싱크홀 발생 #트럼프노믹스 생사도 장담 못해 #꾹 참고 넘어가면 증시에 호재

특히 샬럿빌은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제퍼슨의 생가 뒷마당 격으로 대통령 후보자들의 단골 유세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아일랜드계인 배넌도 버지니아주 출신이라는 점은 묘한 아이러니지만, 그가 주창하고 트럼프가 채택한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가 백인 제일주의(White America First)라는 속살을 감추고 있었음이 샬럿빌 사건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은 그나마 성스러운 땅의 가호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국이 인종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위기의 순간에 배넌의 퇴장은 갈등 봉합의 최소한의 조치라는 점에서 다행이나 양비론(兩非論) 내지 다비론(多非論)을 들먹이며 백인 극단주의자, 네오 나치까지 옹호하는 듯한 트럼프의 핏대 어린 언변과 찰스턴의 흑인교회에서 울먹이듯 퍼져 나왔던 오바마의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큰 대조를 이룬다.

콘·므누신·클레이튼 경제 라인 흔들

취임 이래 트럼프 대통령 곁을 떠난 이들은 배넌을 제외하고도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을 시작으로 라인스 프리버스 대통령 비서실장, 10일 천하에 흑개그를 선보이고 자폭한 일명 ‘그란데 무초’ 앤서니 스카라무치 공보수석, 러시아 스캔들 수사로 인해 해임된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 그리고 지난 최근 며칠 새 이어진 대통령직속 자문위원회의 위원들의 집단사임 행렬까지 가관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휘저어 놓은 미국 정신은 이제 ‘제2의 독립선언’급 치유책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이 가운데 금융시장은 특별히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의 거취 결정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지금까지가 정치적 싱크홀이었다면 경제수석 격인 콘까지 사임할 경우 실질적 타격을 가져올 경제적 싱크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계 금융엘리트 콘이 사임하면 또 다른 유대계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을 위시로 트럼프 정권 구석구석에 포진한 ‘골드만 마피아’들의 거취도 장담할 수 없다. 비서실장-공보수석-대변인-FBI 국장-전략수석의 줄사퇴에 따른 정무라인 훼손에 이어 콘(경제수석)-므누신(재무장관)-제이 클레이튼(SEC 위원장) 등의 경제라인과 디나 하비브 파월(NSC 부보좌관) 등이 무너진다면 정치 리스크가 금융 리스크를 촉발시킨 전형적 사례가 될 것이다.

뉴욕의 베스트셀러인 라이어스 포커(Liar’s Poker)에는 모기지 채권 시장의 신기원을 개척해 낸 월스트리트의 전설적 트레이더 마이클 모타라가 등장한다. 2000년도에 숨진 모타라는 자가용 헬리콥터로 출퇴근을 하는 등 다양한 파격을 보였으나 최강의 금융 엘리트를 다수 양성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에게서 도제식 수련을 받은 이들은 모타라 베이비라 불렸고 그 계보 상단에 게리 콘 NEC 위원장이 있다. 또한 월가의 이너서클에게서 발견되는 모타라·제러미(예레미아)·게란직·블렝페인 등 이국적 유대인 이름은 소속이 달라도 강력한 집단 파워를 내뿜는다. 여기에도 콘 위원장의 이름이 걸려 있다. 전 세계 억만장자의 3분의 1과 노벨상 수상자의 5분의 1을 차지한 채 미국 정재계 및 언론계를 좌지우지한다는 이들의 대표선수 명단에도 올라가 있다. 게리가 네오나치를 옹호한 트럼프를 용납할지 의문시되는 결정적 이유다.

트럼프 진정 어린 사과 있다면 잔류할 수도

콘 위원장이 트럼프 신임 대통령과 의기투합한 사안들은 난코스의 과제들이다. 감세에 방점을 둔 야심찬 세제개혁은 30년 만에 미국의 국세행정을 본격적으로 손보는 일로 판이 커졌다. 2008년 금융위기 이래 월가의 족쇄가 되었던 도드-프랭크 법안(금융 개혁에 관한 법)을 무력화하는 선봉에도 그가 있다. 둘 중 하나만 해내도 보수파에게는 엄청난 승리를 안기는 일들이다. 내친김에 콘이 2018년 2월 초 임기가 도래하는 재닛 옐런에 이어 16대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자리를 노린다는 설도 파다하다. 글로벌 경제대통령인 연준 의장직을 확보하는 것은 월가에서 오매불망 기원하는 ‘신자유주의 부활’에 화룡점정을 찍는 일이고 Fed의 긴축 사이클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디딤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골드만삭스 내부 문서에 트럼프 일가가 기피고객 명단으로 등재되어 있었다는 루머가 불거져 나왔다. 골드만삭스가 대출·보증·채권인수·프로젝트파이낸스(PF)·기업공개(IPO) 등을 포함해 트럼프 일가와 단 한 건의 거래도 한 적이 없다는 점이 증거로 떠돈다. 루머가 사실이라면 콘을 비롯한 트럼프 행정부 아래 똬리를 튼 수많은 골드만삭스 출신들은 자기모순을 배태하고 있음이다. 별도의 검은 어젠다를 품고 있지 않는 한 혐오고객을 주군으로 모시는 것은 쉽지 않다. 이쯤 되면 누가 곰이고 누가 왕서방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콘 위원장의 거취는 트럼프노믹스의 생사를 가를 중요한 변수다. 사상 최고치로 춤추고 있는 미국 증시가 콘의 사임설이 가시화되면 본격적 하방조정 국면에 들어갈 수도 있다. 이 경우 금융주가 가장 낙폭이 클 것이다. 반면 그가 꾹 참고 넘어간다면 호재로 바뀐다. 유대계 엘리트들의 역린을 건드렸지만 이들이 신념을 지키기에는 포기해야 할 실리가 너무 크다. 혹여 트럼프의 인종주의에 대한 진정 어린 사과가 곁들여진다면 콘의 입장은 잔류로 굳어질 수 있다. 다만 금융계에서 포커 페이스로 잔뼈가 굵은 콘도 “심하게 실망했다(deeply disappointed)”며 대통령을 공개 비난한 것을 보면 상황은 잘돼야 본전인 수준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김문수
액티스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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