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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 독립의 꿈이 실현되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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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호 22면

요즘 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포스팅이 ‘먹방’으로 채워지는 빈도가 늘어났다. 산지의 제철 식재료부터 유명 식당의 메뉴,  심지어 장례식장 육개장까지 아우른다. 사실 누구나 다 올리는 음식 포스팅에 나까지 합세할 의도는 없었다. 어쩌다 보니 바닷가와 수산시장에 있었고, 정선의 오일장을 들렀으며, 유명 셰프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먹었을 뿐이다. 돌아서면 똥으로 변할 음식이 페이스북에 올려지면 그럴싸한 그림의 콘텐트가 되었다. 꽤 괜찮은 발견이다.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67> 브라운 핸드 블렌더

누군들 먹는 일에 관심이 없으랴. SNS 이용자들이라면 한 번쯤 올렸음직한 뻔한 사진과 자랑은 빼기로 했다. 이 판에서도 식상함은 환영받지 못한다. 음식 또한 이야기가 얽혀있지 않으면 재미없다. 난 음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이야기가 곁들여진 음식은 무덤덤해진 일상의 반복을 특별한 기억으로 바꾸어 놓는다. 매 끼니의 이야기가 풍성해지면 먹는 일이 훨씬 즐거워진다. 음식의 의미는 결국 기억으로 강렬해지는 법. 싫건 좋건 앞으로도 꽤 많은 음식을 축내며 살아야 할 게다. 나의 먹방은 현재의 관심과 방향을 읽게 해주는 현상의 단면이다.

보기 좋고, 쓰기 좋고, 보관도 좋을 것

먹거리와 음식에 관심이 커진 속내를 솔직히 털어놔야 한다. 마누라가 해 주는 밥에 전적으로 매달리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요즘 아저씨 증세의 심화로 책잡힐 일만 늘어나는 게 내 모습이다. 미운털이 더 박히면 더운 밥 얻어먹기도 힘들거니와 퇴출당할지도 모른다. 아무 데서나 털어놓지 못하는 불안과 공포를 마냥 달고 다닐 수만은 없다. 끼니 독립의 절실함은 더 이상 피할 수도 미룰 수도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다행히 오래전부터 음식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재료를 섞고 익혀 맛을 내는 과정은 예술 창조의 과정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글 쓰고 사진 작업하는 일 역시 소재를 선택하고 직조의 능력을 더해 성과를 내지 않던가. 무엇이 되던 중요한 것은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거다. 모자라거나 넘치면 곤란하다. 좋은 맛이란 음식의 모양과 색채 크기와 씹는 감촉까지를 포함한 적당함의 공감이다.

그런대로 몇 음식의 레시피를 익혔다. 잘하지는 못해도 형편 없지는 않다. 가장 어려운 건 재료를 다듬고 써는 일이다. 적당하게(요리에서 제일 어려운 게 적당함이 어떤 것인지 아는 거라나) 야채를 써는 방법만 해도 얼마나 많은가. 채 썰기, 납작 썰기, 깍뚝 썰기…. 재료를 일정한 두께로 잘 썰어야 보기 좋고 맛도 난다는 걸 누가 모를까. 쉽게 보이는 칼질이건만 제대로 될 리 없다.

왼손으로 재료를 잡고 보지도 않고 칼로 숭숭숭 썰어내는 실력은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일이란 걸 알았다. 음식으로 일가를 이룬 요리사의 손놀림은 평생의 시간을 퍼부은 공력의 표시였다. 마음대로 잘 안 되니 핑계나 면피의 변명 하나 정도는 준비해둬야 한다. 죄를 뒤집어 씌워도 말 없는 만만한 도구가 속죄양 역할을 맡게 된다. 칼이 잘 들지 않아서, 얇게 저미는 도구가 없어서, 곱게 갈아내지 못해서…. 그것도 모자라면 온도계나 타이머까지 들먹이게 된다.

어떤 판이든 일 못 하는 이들이 연장 탓하게 마련이다. 내가 그렇다. 칼질의 미숙함을 보완해 줄 신기의 도구를 간절히 원했다. 웬만한 주방도구는 대충 안다. 유럽의 도시를 돌며 눈 동냥해 둔 것이 바탕이다. 몇몇 주방명품 브랜드의 제품은 이미 사 둔 것도 있다. 내가 잠시 한 눈 판 사이 더 좋은 물건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음식 만드는 데 사용 빈도가 높은 자르고, 다지고, 섞고, 갈아내는 도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직접 요리해 보겠다고 덤벼든 남자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인터넷 뒤져 열심히 공부하고, 좋다는 주방기구부터 사들이는 거다. 각 회사 제품별 종류와 성능 분석은 기본이다. 응용법까지 줄줄 읊어대야 면이 선다. 나라고 왜 안 그랬을까. 그동안 쌓아둔 정보와 경험으로 선택의 범위를 좁혀갔다.

여러 용도로 쓸 수 있으며 크기가 작을 것, 간단한 구조로 사용 후 세척과 보관이 편할 것, 인간공학적 디자인으로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갑이 좋을 것,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오브제의 역할을 할 것…. 선택의 기준은 명확해졌다. 이를 충족시키는 물건은 핸드 블렌더다.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만큼 가볍고 긴 몸통 속엔 모터가, 끝엔 칼날이 달렸다. 용도에 맞는 칼날로 바꾸면 온갖 작업이 수월해진다.

날렵한 몸매, 강력한 파워 … 요리 남자들의 ‘장난감’

세상엔 많은 핸드 블렌더들이 있다. 나의 선택은 브라운(BRAUN)이다. 베를린의 주방용품 매장에서 봤을 때부터 이미 점찍어 두었다. 날렵한 선의 굴곡이 멋지게 보였던 덕분이다. 굵기가 주는 쾌감도 괜찮다. 여러 메이커의 블렌더가 섞여있는 쇼 윈도에서 단연 돋보였다. 아름다움의 인자가 달랐다. 그럴 수밖에 없다. 몇 년 후면 백 년을 맞게 되는 디자인의 명가 브라운사의 제품이니까.

스티브 잡스 시절의 아이팟과 아이폰은 브라운에서 만들었던 라디오를 그대로 베낀 디자인이다. 세상을 뒤흔들었던 혁신의 아이콘조차 닮고 싶어 했던 디자인을 만들어낸 회사가 바로 브라운이다. 더 정확하게 디터 람스가 이끌었던 시절의 브라운이다.

기능이 곧 아름다움으로 바뀐 물건의 완성이 보여준 성과는 대단했다. 이후 세월이 흘렀다. 브라운은 내부 사정으로 미국과 영국의 회사로 흡수되는 굴곡도 겪었다. 경영의 주체가 바뀌어도 브라운은 살아남았다. 화려했던 디자인 전통을 여전히 이어가는 적통의 역할만은 벗어 버릴 수 없었던 게다.

브라운의 제품들은 쓰고 버려지는 물건이 아니다.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의 디자인 미술관에는 브라운 제품이 진열돼 있다. 다리미·주서기·라디오·계산기·커피 메이커 같은, 하나같이 대단해 보이지 않는 생활용품들이다. 이제 미술품이 되어 전시장에 놓여진 낡은 물건들은 묘한 아우라를 풍기며 오브제가 됐다.

진열대 한 쪽에 세워져 있는 아이보리색 핸드 블렌더를 보았다. 갈고, 자르고, 섞고, 채 써는 성능에 충실했을 뿐인 형태가 비례와 균형을 갖춘 궁극의 아름다움과 통했다. 이상한 체험이다. 새로운 핸드 블렌더의 디자인을 납득하는 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연도별 생산 모델을 한꺼번에 비교해 보면 방향이 보이는 법이다. 브라운 디자인의 연결고리는 한 번도 끊어진 적 없었다.

브라운의 제품은 처음부터 어깨에 힘들어간 명품 행세를 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의 생활을 챙기는 살가운 이웃 같은 친근한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실력은 대단하다. 눈앞에 알짱거리는 것들은 단숨에 초토화 시켜버린다. 영화 속 전사가 된 기분이다. 스위치를 누르면 과일들은 박살난다. 실력이 모자라 얇게 잘라내지 못하는 무를 저미는 것도 문제없다. 딱딱한 홍당무도 단칼에 베어버린다. 신난다. 이런 장난감이 생기다니!

이제 끼니 독립의 꿈은 허황된 기대가 아니다. 열심히 연마해 마누라 없어도 안 굶는 아저씨가 되겠다. 실력이 안 되면 도구의 능력이라도 빌릴 거다. 판에 박은 메뉴를 벗어나 기발한 음식도 만들어 볼 거다. 마누라여, 나를 측은지심으로 바라보지 말지어다. 내겐 날고 기는 친구들과 호기심 가득 찬 눈이 있으니까. ●

윤광준 :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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