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한걸음 물러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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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호 31면

에버라드 칼럼

훗날 역사 기록이 공개되고 정책 관여자들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우리는 2017년 8월 초 미국과 북한이 얼마나 전쟁에 가까운 상태였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트럼프 국내 정치서 곤경에 몰려 #시진핑 당 대회 앞두고 자중 모드 #입지 다지면 제재 동참할지 의문 #中 공산당 대회 후 北 핵실험 예상

첫째, 미국과 북한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 협상할 의도가 없다는 점을 매우 분명한 방식으로 알리고 있다. 지난달 4일 미사일 실험 직후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은 “그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케트를 협상테이블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외교관들은 미국과의 비공식적 접촉에서 미국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북·미 평화협정, 한미동맹 철회, 북한을 겨냥한 핵무기·미사일 철수 등을 요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내기 위해 압박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직은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적 충돌보다는 여전히 협상을 선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트럼프의 근본적인 대북 인식은 위험하다. 북한을 협상장으로 이끌기 위해 압박 전략을 폈지만, 도리어 북한이 미사일을 쏘도록 유도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트럼프의 말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단지 평양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 이전 미국의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 ‘장전 완료’와 같은 레토릭을 사용하지 않았다. 평양 입장에선 트럼프의 레토릭을 미국의 군사 압력 강화로 느꼈음에 틀림없다.

둘째, 이번 위기는 워싱턴과 평양·베이징의 국내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훨씬 더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율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러시아와의 스캔들로 특검 조사를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샬럿빌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를 놓고 백인 극우주의자를 두둔하는 자세를 보여 비난을 받았다. 취임 이후 트럼프는 정치적 곤경에 처할 때마다 엉뚱한 방향으로 주의를 돌리곤 했다. 1998년 의회에서 공화당 주도의 탄핵에 직면한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이라크 공습을 명령했던 것 같은 유혹을 트럼프도 받을 수 있다.

평양 또한 대내적 압력을 받고 있다. 지난 2월 북한 정권은 김원홍 국가보위상을 숙청한 바 있고, 5월에는 김정은을 암살하기 위한 정교한 음모가 있었다고 한다. 일일 주민 배급량은 최근 가뭄으로 인해 300g까지 줄었다. 북한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약점이라도 보일 경우 정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트럼프의 호전적인 트윗으로 일이 더 꼬였다. 북한 고위층은 미국의 위협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 지난 15일 “어리석고 미련한 미국놈들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보겠다”는 김정은의 발표는 매우 환영할 만하지만, 미국을 상대로 한 북한의 도발 준비는 아마도 실행 상태에 가까웠을 것이다.

베이징은 19차 중국 공산당 대회에 모든 것이 뒤덮여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당 대회에서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공산당의 승인이 있을 때까진 한반도의 불안정을 허용할 수 없다. 이는 중국이 한반도 내 전쟁을 막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일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일단 한반도에서 전투가 벌어질 경우, 중국이 역내 안정화를 명분으로 강력한 수준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셋째, 북한이 괌 해역에 쏜 미사일이 괌 영토에 떨어질 수 있다. 여러 차례 탄도 미사일 발사에 실패했던 북한이 이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에 성공한 것은 공학 기술이 갑자기 향상됐기 때문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키예프 남동부 유자마쉬 공장에서 관련 기술을 습득한 덕이다. 오랜 기간 부채에 시달렸던 유자마쉬의 기술자들은 북한에 몰래 미사일 관련 기술을 판매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자마쉬에선 미사일 추진 기술만 연구했지 유도 기술은 연구하지 않는다. 만약 북한이 미사일의 목표를 설정할 때 아주 작은 실수만 해도 미사일은 괌 본토를 강타할 수 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할 경우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의 말대로 ‘게임이 시작될 것(Game on)’이다.

위험이 잠시 줄어든 사이 우리는 위기로부터 교훈을 얻었다. 북한은 무모한 미사일 발사로 이번 위기를 촉발시켰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한걸음 물러났다. 또 긴장 상태에서 중국의 반응을 관찰할 수 있게 됐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 2371호에 따라 대북 무역 제재를 시행하겠다는 발표를 했고, 이로 인해 1961년 체결된 ‘조중 우호 조약’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그 다음 스텝은 무엇일까. 첫째, 중국은 공산당 대회 전까지만 미국의 제재 요구를 따를 것이다. 일단 자신의 입지가 공고해진 이후에는 시진핑 주석이 미국의 주장을 지금처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이 엄격한 유엔 안보리 제재를 공산당 대회 이후에도 지속할 가능성이 작다.

둘째, 이번 위기는 한반도 밖에서 미국과 북한 간 군사 행동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보여 줬다. 북한이 괌에 미사일을 쏠 경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등으로 요격을 시도할 것이다. 미국은 한국 영토 바깥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와 상의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북한의 군사적 충돌은 한국 정부의 발언권이 생략된 가운데 벌어질 수 있다. 군사적 충돌 상황이 확대될 경우 한국의 국가 이익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것인데도 말이다.

셋째,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은 실제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저장하는 곳을 알지 못할 뿐더러 어떠한 경우에라도 핵시설이 손상되어 방사능이 누출 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ICBM 프로그램을 포기할 가능성이 매우 작다. 북한은 당분간 또 다른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 것이다. 기존 실험 발사 결과를 해석하고 로켓 기술을 다듬을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북한은 중국 공산당 대회 이후, 미사일과 소형화된 핵탄두에 대한 실험을 재개할 것이다.

모든 이가 지금은 긴장이 미세하게나마 완화됐다며 안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위기는 재발할 것이다. 단지 휴지기일 뿐 끝난 것이 아니다.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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