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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 “예전의 나는 너무 엄숙했다”

중앙일보

입력

영화 '브이아이피'에서 국정원 직원 역할을 맡은 배우 장동건. 현실적이지만 후반부에는 정의감과 분노로 현실을 넘어선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브이아이피'에서 국정원 직원 역할을 맡은 배우 장동건. 현실적이지만 후반부에는 정의감과 분노로 현실을 넘어선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24일 개봉하는 영화 ‘브이아이피(V.I.P.)’의 도입부는 전형적인 느와르다. 트렌치코트, 연속해서 발사하는 총, 난무하는 피, 도시의 야경이 섞인다. 담배 연기 사이로 인상 쓴 남자의 얼굴이 드러난다. 국정원 직원 박재혁 역을 맡은 배우 장동건(45)의 얼굴이다. 예의 그 선한 얼굴로 이번에도 총 쏘고 피를 뒤집어쓰는 역할을 맡았다. ‘친구’(2001) ‘태극기 휘날리며’(2004)부터 ‘마이웨이’(2011) ‘우는 남자’(2014)까지 이어지는 거친 영화다.

영화 '브이아이피'로 3년 만에 스크린 복귀 #전후반부 큰 변화 겪는 국정원 직원 역할 #"배우가 되려는 집착, 영화에 대한 엄숙주의 다 내려놨다" #김명민, 이종석, 박희순 출연 느와르 24일 개봉

남자 네 명이 끌고 가는 영화에서 재혁은 가장 복잡한 인물이다. 국정원 직원으로 험한 현장을 떠돌다가 희망에 따라 사무직에 안착한다. 말 그대로 줄을 서다가 북한 고위층 자제(이종석 분)의 기획 탈북을 주도하고, 그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알고 갈등한다. 살인마를 뒤쫓는 형사(김명민 분), 북에서 내려온 공작원(박희순 분)과 얽히면서도 비교적 객관적으로 침착하게 사건을 따라가지만 후반부에는 엄청난 분노와 정의감에 휩싸인다.

17일 만난 장동건은 “잘생기고 착한 얼굴 때문에 연기 변신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은 늘 받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극복해야 할 한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못생긴 얼굴도 똑같지 않나”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거친 영화에 출연하고 있는 그는 “예전에 비해 영화를 대하는 태도, 삶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이번 영화는 어떻게 선택했나.

“시나리오가 잘 읽히고 만화책 보는 느낌이었다. 소재는 북한인데 귀순한 연쇄살인마를 다룬 설정이 사실적으로 보였다. 또 박재혁은 심경변화가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독 박훈정의 전작 ‘신세계’에도 신뢰감이 있었다.”

국정원 직원은 어떤 톤으로 표현했나.

“짜증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모습이 기본적인 톤이다. 기존 영화들에서 국정원 직원은 첩보원 같은 이미지다. 하지만 이번에는 업무에 찌든 회사원, 부장님 느낌으로 가려고 했다.”

침착하던 인물이지만 후반부에 거대한 분노를 느끼고 변화한다. 어떻게 연기했나.

“연기로 감정을 너무 많이 드러내면 반전이 오히려 심심하다. 많이 드러내지 않고 빼고, 누르려고 했다. 처음에는 답답하고 어색했지만 촬영하면서 이게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더 센 걸 보여줘야 한다는 욕심을 지웠다. 큰 감정을 보이는 것보다 평범한 생활 연기가 더 재미있다. 다양한 표현법도 시도해볼 수 있고.”

24일 개봉하는 영화 '브이아이피'. 기획 입국한 북한 고위층 자제의 폭력적인 살인, 남한ㆍ북한ㆍ미국ㆍ중국 관계까지 복합적으로 그렸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24일 개봉하는 영화 '브이아이피'. 기획 입국한 북한 고위층 자제의 폭력적인 살인, 남한ㆍ북한ㆍ미국ㆍ중국 관계까지 복합적으로 그렸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대표 꽃미남이었다. 왜 계속 거친 영화에 출연하나.

“개인의 취향이기도 하지만 우선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거친 영화만 제의가 들어온다. 반면에 드라마는 평범한 연기의 재미가 있는 작품이 많다. 또 연기 생활이 25년인데 기간에 비해 작품수가 적은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70이 좋아도 30이 안 좋으면 작품을 안 했다. 고사를 많이 했다. 요새는 60만 좋아도 해본다. 신중히 선택한다고 잘되는 것도 아니더라.”

모든 인물이 각기 다른 이유에서 절박하게 생존을 추구하는 영화 '브이아이피'.[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모든 인물이 각기 다른 이유에서 절박하게 생존을 추구하는 영화 '브이아이피'.[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번 영화는 배우로서 어떤 의미인가.

“특별히 받고 싶은 평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연기에 대한 갈증,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욕 먹고 칭찬 받고 부침을 겪고 다 해봤기 때문이다. 그저 작품과 나의 궁합이 중요한 것 같고 영화에 내가 잘 녹아들었다면 그걸로 됐다.”

스타보다 배우가 되려는 노력이 언제나 보이는데.

“예전에는 그렇게 되려고 집착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것조차 내려놨다. 한두 작품만 할 것도 아니고 작업하고 연기하면서 그 중에서 인정 받거나 실패할 수도 있다. 계속 실패해서 기회가 사라지지만 않는다면 신경쓸 필요가 없지 않나.”

잘생긴 얼굴이 한계가 된다는 지적도 많았다. 특히 이번 작품 같은 느와르에서는.

- “극복할 필요가 있나? 잘생긴 얼굴 때문에 연기 변신이 힘들다면 못생긴 얼굴도 마찬가지다.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배우 장동건.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배우 장동건.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데뷔 시절부터 겸손한 배우로 유명한데.

“겸손함도 이제 나 자신이 질린다. 과거에 나는 너무 애늙은이 같았고 미숙하고 주저주저했던 것 같다. 덜 걱정했어도 되고, 좋은 결과는 더 즐겨도 괜찮았다. 그때는 다음만 생각하느라 즐기지를 못했다. 아내 고소영과 열애설이 난 후에도 사람 많은 곳에는 갈 엄두를 못 느껴서 연습하기 위해 손 잡고 동네 한 바퀴 돌고 그 다음에 카페에도 가고 그랬다.
또 예전에는 너무 진지해서 일종의 엄숙주의 같은 게 있었다. 최선을 다해 찍은 영화에 대해 얘기할 때 장난치고 농담하면 안될 것 같았다. 지금은 대중이 장동건을 어느 정도 안다고 본다. 오해가 점점 줄어들고 간극이 줄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은.

“코믹 연기에 욕심이 좀 생긴다.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 같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2012)에서 망가지는 역할을 했는데 지금 다시 보면 쭈볏쭈볏 한다. 그때까지만해도 그랬던 것 같다. 이제는 그런 경험이 있고 확신이 있으니까 더 재미있게 놀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라라랜드’ ‘캐롤’ 같은 좋은 멜로 영화가 한국에 요즘 없다. 멜로인데 뻔하지 않은 멜로를 해보고 싶다.”

다음 작품은.

“촬영을 마친 영화 ‘7년의 밤’으로 올해 내 관객을 다시 만날 것 같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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