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이 공개한 '대북 레드라인'…野, 일제히 우려와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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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서 북한에 대한 '레드라인(금지선)'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레드라인은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는 것"이 북한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이라는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등 국제사회는 북한을 향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음"은 분명히 해왔지만, 지금까지 그 내용을 구체화한 적이 없어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곧 정치 쟁점으로 떠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제공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제공 청와대]

그간 한미 양국은 '레드라인'의 존재 자체만 언급했을 뿐, 구체적인 선을 제시하지 않았다. 지난달 이덕행 당시 통일부 대변인은 "원래 레드라인은 공개하면 레드라인이 아니지 않나"라며 "특별한 레드라인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언급했고, 숀 스파이서 전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4월 "모든 것을 미리 알리는 것은 현명한 전략이 아니다"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국제사회의 대북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문 대통령의 레드라인 언급 이후 외교부는 "대통령께서는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의 엄중성, 그리고 그 시급성에 대한 심각한 인식에 따라서 이와 같은 언급을 하신 것으로 본다"는 입장을 내놨다. 구체적 행동을 레드라인의 기준으로 언급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엄중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 전문가들도 엇갈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은 이날 "레드라인이 공개되면서 우리의 선택지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그간 레드라인을 언급하지 않았던 미국과의 불협화음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핵탄두를 탑재했다며 공개적으로 밝힐 경우, 한국 정부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북한이 ICBM에 핵탄두를 실었는지를 판단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며 "북한이 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레드라인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핵탄두 탑재' 주장을 입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야권은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하면 당연히 레드라인을 넘는 것"이라며 "북한이 ICBM에 핵탄두를 장착하는 것까지 우리가 지켜보고 있어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정 원내대표는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지 않았느냐"며 "레드라인으로 가지 않도록 전쟁억지력을 발휘하겠다는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한국의 승낙 없이 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는 선언적인 얘기는 별 가치가 없다"고 강조했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레드라인 이전에 추가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에 대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또 레드라인을 넘는 경우에 어떻게 하겠다는 단호한 의지 표명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바른정당 소속의 김영우 국회 국방위원장은 "대통령이 밝힌 레드라인은 우리 정부의 안보 불감증이 이미 레드라인을 넘어섰다는 것"이라며 "북한에 ICBM 핵무기를 완성할 때까지 기다려주겠다는 잘못된 신호를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유정 국민의당 대변인은 "레드라인과 같은 민감한 문제는 외교적 레토릭으로 접근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문 대통령이 기준선을 단정해서 결국 외교적 미숙함만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언급된 'ICBM 핵탄두 탑재'가 관련국들과의 컨센서스를 거친 레드라인인지, 우리 정부가 임의로 설정한 레드라인인지, 또는 문 대통령의 즉흥적 발언인지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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