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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미·중 통상 갈등의 유탄 피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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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신승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신승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미국 현지시간으로 1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관행에 대해 통상법 301조 조사를 검토하라고 미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함으로써 미국과 중국 간 통상분쟁이 가시화하고 있다. 트럼프는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중국산 제품에 45%의 관세를 물리겠다는 대선 공약을 내놓은 바 있지만 대통령 당선 후 올 초 미·중 정상회담과 ‘100일 계획’ 합의로 유야무야되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달 열린 ‘포괄적 경제대화’가 성과 없이 끝나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미사일 문제에 대한 중국의 미온적 태도를 비판하며 양국 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전가의 보도’처럼 써 온 ‘통상법 301조’ 카드를 꺼내 들어 미·중 통상갈등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가시화하는 미·중 통상 분쟁 #극한 대결이면 미국도 피해 #승자 없고 패자만 있는 싸움 #선제적 대응만이 우리 살길

일각에서는 과거 악명 높았던 ‘수퍼 301조’가 부활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엄밀히 말해 이번 조치는 ‘일반 301조’로 보는 것이 맞다. 일반 301조를 대폭 강화해 USTR에 외국의 무역관행을 의무적으로 검토하도록 한 게 수퍼 301조다. 애초 수퍼 301조는 한시적으로 입안됐다가 2001년을 마지막으로 효력을 잃었다. 따라서 금번 조치는 일반 301조가 발동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수퍼가 아닌 일반 301조라고 얕봐선 안 된다. ‘일반’과 ‘수퍼’의 차이는 조사 개시의 재량·의무의 차이이지 제재수단의 강도 차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재산권 침해 여부에 대한 조사가 결정되면 조사 개시와 동시에 미국은 중국과 양자협의를 진행하고 협의가 결렬될 경우 조치 대상의 제한 없이 일방적으로 보복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제한조치를 취할 수 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중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할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1980~90년대 세계의 수퍼파워였던 미국은 301조를 무소불위로 휘둘렀지만 중국을 상대로 할 경우 ‘전가의 보도’가 ‘양날의 검’으로 돌변할 수 있다. 몇 가지 사실로 볼 때 강대강(强對强) 대결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첫째, 301조가 규정한 협의 절차에 중국이 참여할 국제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에 중국은 일단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중국 내에서 활동 중인 수많은 미국 기업에 중국 정부가 보복조치를 가할 수 있다. 셋째, 98년 ‘미국-301조 사건’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의 판정으로 유추해 볼 때 중국이 미국을 WTO에 제소할 경우 중국이 승소할 가능성이 있다. 강대강 국면이 전개되면 미국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돼 당초 원하던 결과를 충분히 얻기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 입장에서도 미·중 통상갈등을 강 건너 불구경할 수만은 없다. 우리 수출의 4분의 1이 중국으로 향하고 있고 주력 수출품목의 상당 부분이 중국과 중복돼 미·중 통상갈등이 현실화하면 주요국 중 우리의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에서 조립 가공을 거쳐 최종적으로 미국으로 수출되는 제품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미·중 통상갈등이 세계 교역 부진으로 전이된다면 우리 수출이 광범위하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승자는 없고 피해자만 속출할 싸움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선 중국 수출 물량 중 중간재 수출 비중이 매우 높은데 이를 낮추고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해 소비재 등 최종재 수출을 늘려야 한다. 또한 올해 예정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협정 추가 협상을 신속히 타결해 광대한 중국의 서비스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수출시장을 다변화해 과도한 대중 무역의존도도 줄여야 한다. 그동안 우리 기업은 중국시장에 안주해 수출국 다변화에 소홀한 결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보복 등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대미 통상 관계는 한·미 FTA 공동위원회 등 기존 대화채널을 활용해 자동차·철강 분야의 무역 불균형이 불공정 무역으로 인한 것이 아님을 적극 설득해야 한다. 또한 덤핑수출 자제,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 등을 통해 대미 무역적자를 줄이는 등 선제적 대응으로 미국과의 통상갈등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끝으로 꾸준한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세계 통상환경의 영향을 덜 받는 첨단기술 집약형 핵심 부품·소재를 개발해 세계시장을 선도해야 한다.

세계 경제의 양강인 미국과 중국 간 통상분쟁은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안겨 주고 다자 통상체제를 뿌리부터 뒤흔들 것이다. 두 나라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수출시장을 다변화하고 미국과의 통상현안을 선제적으로 해결해 미·중 통상갈등의 유탄을 피해야 한다.

신승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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