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째 대문에 태극기 내건 위안부 피해 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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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보은=연합뉴스]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보은=연합뉴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극기가 펄럭이는 집이 있다. 속리산 국립공원 길목인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에 있는 충북 유일의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87·사진) 할머니 집이다.

이옥선씨 “불행 반복 안 되게 빌어”

세계 위안부의 날(8월 14일)과 72주년 광복절(8월 15일)을 앞둔 13일에도 이 할머니의 집 대문 기둥에는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이 할머니는 “나라를 잃은 백성의 설움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조국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크고 든든한지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가 고향인 이 할머니는 열여섯 살이던 1942년 일본군에 끌려갔다. 그곳에서 2년 넘게 지옥같은 위안소 생활을 했다. 광복 후 돌아와 숨어살듯 속리산 주변 식당 등에서 일했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결혼했지만 아이도 갖지 못했다. 고열과 함께 전신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으로 일상생활도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를 본 이 할머니는 가슴 속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울컥 솟아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 할머니는 “백성을 지켜주지 못한 나라가 원망스러웠지만, 내 나라가 건재하고 내 눈앞에 태극기가 펄럭인다는 것 자체가 큰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남편과 사별한 뒤부터 아침마다 대문에 태극기를 걸기 시작한 것이 벌써 30년이 넘었다. “태극기를 보며 나라가 부강해져 다시는 불행이 반복되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는 최근 보은지역에 소녀상 건립이 추진된다는 소식에 “전국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지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기회가 된다면 제막식에서 당시 내가 겪은 일을 증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보은=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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