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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남’은 실크 재킷으로 더위 잡고 품격도 갖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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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4호 23면

[두 남자의 스타일 토크] 여름, 신사는 무엇을 입나

1 두 남녀의 관계는 아버지와 딸. 이 정도 갖춰 입으면 ‘세대 차이’란 남의 이야기. 2 이탈리아 남자들은 섭씨 4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도 옷을 갖춰 입는다. 데오드란트와 향수는 필수.

1 두 남녀의 관계는 아버지와 딸. 이 정도 갖춰 입으면 ‘세대 차이’란 남의 이야기. 2 이탈리아 남자들은 섭씨 4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도 옷을 갖춰 입는다. 데오드란트와 향수는 필수.

모든 슈트의 왼쪽 깃에는 구멍이 나 있다. 단추도 없는데 구멍이 나 있는 이유는 바로 꽃을 꽂기 위해서다. 사자도, 공작도 심지어 오리도 수컷이 더 화려한데 남자라고 멋부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만 살기 바빠 잊고 있었을 뿐. 남성 복식계의 구루로 불리는 편집숍 알란스 대표 남훈과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신동헌이 남자들의 ‘멋’을 되찾기 위해 모였다. 남자의 신나는 삶을 응원하는 두 사람의 스타일 이야기. 그 첫 토크 주제는 ‘무더운 여름, 신사는 무엇을 입어야 하는가’이다.

차려 입으면 행동패턴도 달라져 #재킷, 티셔츠·반바지와도 매칭 #격식과 예의 의미 충분히 전달 #린넨보다는 실크가 ‘멋남’ 소재 #슈트 입을 땐 울이나 코튼 소재로 #폴리 계열은 무겁고 통풍 안 돼 #높은 자리 남자들 차림새 중요 #사치 아니라 격에 맞는 몸가짐을

신동헌(이하 신)=이번 여름은 너무 더워서 바깥에 나가기만 해도 휴양지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에 중요한 모임이나 업무 미팅이라도 있으면 대체 뭘 입어야 하나 고민이다. 더위도 잡고 품격도 갖추는 스타일링 비법이 있을까?

남훈(이하 남)=그건 마치 ‘고품격 할인점’이란 말처럼 들리는데?(웃음) 둘 중 하나를 희생하는 것이 정답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진 않다. 바로 ‘재킷’을 걸치는 거다. 어떤 옷차림이든지 재킷을 걸치는 것만으로 격식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셔츠나 라운드 티셔츠, 폴로 티셔츠 할 것 없이 잘 어울리고, 반바지에도 의외로 매칭이 잘 된다.

신=여름이면 섭씨 40도 넘게 올라가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아저씨들이 재킷을 꼭 입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이탈리아는 거지도 모델 같다’는 말도 그런 분위기에서 나온 건가?

남=재킷은 군복에서 시작된 옷이다. 정중하고 단정한 느낌이 녹아 있는 것도 그래서다. 격식을 차리고 있다는 느낌과 상대에게 예의를 표한다는 의미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사무실 옷걸이나 자동차 뒷좌석 등 손 닿는 곳에 놔뒀다가 약간의 격식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시점에 걸치면 끝이다.

신=뭔가 몸에 닿는 상상만 해도 더워지는 것 같은데, 여름에는 역시 린넨 소재가 최고겠지? 개인적으로는 하얀색 린넨 재킷을 즐겨 입는데, ‘흰색 재킷’이라고 하면 뭔가 되게 야할  것 같지만 린넨 소재일 때는 용서가 되더라.

남=아, 실크를 꼽았다면 ‘멋남’으로 인정해 줬을 텐데. 여름에 가장 빛나는 소재는 뭐니뭐니해도 실크다. 얇고 컬러감이 좋아서 여름 햇빛에 반사되면 남자도 우아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실크는 내구성이 약하기 때문에 주로 코튼이나 울, 린넨과 혼방으로 제작한  재킷이 많은데, 꼭 한번 입어 보길 권한다.

신=실크로 만든 재킷이라니 상상도 못했다. 가격이 비싸지 않을까 겁나는데.

남=브랜드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백화점 패션 편집매장(맨온더분)에서 30만원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상상하는 것처럼 번쩍번쩍하지 않으니까 도전해 봐라.

신=하긴 린넨 재킷도 처음엔 모험 같았는데 이제는 익숙하니까.

남=주변에 보면 너무 잘 구겨져서 린넨 재킷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린넨 소재의 진짜 멋은 ‘자연스러운 구김’에 있다. 손때가 묻고 스크레치가 가해진 가죽가방이 좀 더 멋있어 보이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자연스러운 주름이 더해졌을 때, 익숙한 분위기가 풍기면서 진짜 멋이 우러나온다. 옷은 무결해야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조금 더 편하게 즐겨도 된다.

신=나도 린넨 재킷을 여러 벌 갖고 있는데, 경험상 비싼 것보다는 저렴하게 산 옷들이 활용도가 더 높은 것 같다. 땀에 젖거나 구겨져도 부담이 덜하고. SPA 브랜드(제조자가 판매와 유통까지 책임져 가격을 낮춘 의류)가 선보이는 저렴한 재킷을 이십대가 아닌 ‘아재’가 입어도 될까?

남=아주 똑똑한 선택이다. 장인들이 한땀 한땀 정성 들여 만든 재킷도 물론 좋겠지만, 여름 재킷은 가볍게 손이 갈 수 있어야 한다. 고가의 재킷이라면 사무실이나 자동차 안에 막 둘 수 없으니까. 다양한 종류가 필요한 겨울 아우터에 비해, 여름에는 재킷 하나면 충분하니까 아껴 뒀다가 겨울옷 쇼핑할 때 쓰자(웃음).

3 여름의 강한 햇살 아래에서는 흰색 슈트도 잘 어울린다. 도전해 보시길. [사진 남훈]

3 여름의 강한 햇살 아래에서는 흰색 슈트도 잘 어울린다. 도전해 보시길. [사진 남훈]

신=그런데 멋을 내려면 진짜 더위를 감수하는 수밖에 없나? 올 여름은 더워도 너무 더운데.

남=유럽은 기온이 높아도 습도가 낮기 때문에 그늘에 들어서면 시원하다. 천천히 걷고,  그늘을 만나면 좀 쉬어 가면 된다. 우리는 그늘에 들어가도 푹푹 찌니까 문제지만.

신=그러고 보니 옛날 양반들도 절대 뛰지 않았다는데. 남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자세 등이 패션 속에 녹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조직 속에서 생활하다 보면 그렇게 쉬엄쉬엄 우아하게 살 수도 없는 일이다. 여름에도 무조건 슈트를 입어야 하고, 실크 소재 입었다가는 시말서 써야 하는 조직의 남자들은 여름에 어떻게 해야 하나.

남=원래 슈트를 입을 때는 재킷 밖으로 소매가 보이는 긴팔 셔츠를 입는 것이 공식이다. 요즘은 쿨비즈 운동 때문에 반팔 셔츠를 입는 경우도 많지만, 격식을 중요시하는 미팅에는 권하고 싶지 않다. 사실 소재에 초점을 맞추면 괴롭지 않게 여름에도 슈트를 입을 수 있다. 우선 폴리계열 화학섬유가 섞인 슈트나 셔츠는 피하는 게 좋다. 가격대가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르고 통풍도 안 된다. 울이나 코튼 소재를 입어라.

신=우리나라 남자들은 산에 가지 않을 때도 등산복을 즐겨 입는다. 주말에 뭘 어떻게 입으면 좋은지 몰라서가 아닐까 싶은데.

남=과거에는 그 역할을 골프 의류가 하던 때가 있었다. 대부분 출근 복장과 주말 복장이 극단적인 대조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웃도어 의류를 좋아한다는 것을 비판할 일은 아니지만 좀 더 차려 입은 듯한 느낌을 내는 연습을 해보면 좋을 거 같다.

신=레스토랑이나 극장에 아웃도어 의류를 입고 가면 결례까지는 아니더라도 절대 센스 있어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한껏 꾸민 아내 옆에 아웃도어 의류 차림의 남편이 서 있는 장면을 목격할 때가 많다. 아무리 금슬이 좋아도 별로 아름답지가 않더라.

남=맞는 말이긴 한데, 우리처럼 옷 좋아하는 남자들이야 아내들이 포기하고 살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이 좀 더 돋보이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남편이 꾸미는 걸 싫어하는 경우도 많다. 과거에는 패션에 관심을 가지면 바람난 거 아니냐고 의심하곤 했지만, 옷 좋아하는 남자는 건전하다. 돈이 가진 가치를 더 잘 안달까. 술 한잔을 포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아이템에 대해 생각하게 되니까(웃음). 그리고 패션에 대한 관심은 다른 라이프스타일로 발전될 가능성이 크다. 좋은 차림으로 좋은 공간에 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다. 좋은 음식과 와인 등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높아진다.
신=평소에 자동차도 ‘옷’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운전석에 앉아 있으면 얼굴 아래로 어깨부터는 안 보이고 차만 보이니까. 그런데 차도 새 것으로 바꾸면 운전도 조심스러워지고, 좀 더 좋은 길로 다니게 되고, 주말 행선지도 바뀐다. 그런 면에서 옷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건 비약은 아닌 것 같다.

남=그래서 높은 자리에 있는 남자들의 차림새가 중요하다. 직장에서도 그렇고,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검소하게 입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들이 복장에 관심이 없어 보여 안타까울 때가 있다. 지위에 맞는 복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치를 하라는 게 아니라 격에 맞는 몸 가짐을 가지자는 거다. 패션에 관심을 가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때와 장소에 맞는 복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자가 옷을 차려 입게 되면 행동패턴이 달라진다. 서 있는 자세부터 앉아 있는 자세, 말하는 자세 등 모든 것이 달라진다. 이게 복장이 가진 위대한 힘이다. 복장은 그 사람의 ‘정신’이다.

신=‘복장은 정신이다.’ 되게 멋있는 말이다. 자,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이번 주말에 아내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갈 때 어떻게 입고 가는 게 좋을까.

남=주중에 입는 슈트의 컬러가 네이비, 그레이일 테니 거기에서 벗어난 색상 재킷을 선택하는 걸로 시작하자. 출근 복장과 다른 컬러의 재킷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기분좋은 분위기 전환이다. 이너웨어로는 라운드넥 티셔츠도 좋고 셔츠도 좋다. 팬츠는 짙은 회색바지여도 좋다. 짙은 회색바지는 천하무적이다. 모든 재킷과 어울리고 누구나 한 벌쯤은 가지고  있으니까. 아까 흰색 재킷 좋아한다고 했지? 흰색은 마음이 넓고 착한색이다. 모든 컬러의  팬츠와 잘 어울려서 스타일링에 대한 고민을  줄여 준다. 남자들은 고민이 되기 시작하면 피하는 동물이니까 시작은 흰색 재킷으로 해도 좋겠다. 모험 같아도 한번 시도해 보면 거울  속에서 자신감이 뿜어져 나올 거다.

신동헌·남훈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남성복 편집숍 알란스 대표
신동헌 스포츠투데이·에스콰이어 기자를 거쳐 남성패션지 레옹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온갖 놀거리를 섭렵한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패션뿐 아니라 카메라·오디오·전자기타·자동차·모터사이클에 이르기까지 광폭의 취미를 자랑하는 순혈 마초다.
남훈 남자의 복장과 패션에 대한 연구를 삶의 목표로 삼은 클래식 슈트 매니어. 패션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면서 여러 기업과 협업해서 브랜드와 편집숍을 함께 만들었다. 자신만의 남성복 편집숍 알란스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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