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미소…승부는 냉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3면

남과 북은 약속이나 한듯 똑같이 흰색 상의를 입고 나왔다. 한국 선수들이 태극기가 선명한 상의에 흰색 모자를 쓴 반면 북한 선수들은 인공기가 없는 셔츠 차림에 맨머리로 경기에 나섰다.

2003 대구 유니버시아드에서 남과 북의 첫 공식대결. 승부는 한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남과 북의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 두 손을 맞잡고 재회를 다짐했다. 한국 여자테니스 복식조가 24일 대구 유니버시아드 테니스장 센터코트에서 벌어진 여자복식 1회전에서 일방적인 경기 끝에 북한의 황은주-신선애 조를 2-0(6-1, 6-1)으로 물리쳤다.

경기 전 한국의 김연(용인시청)-이안나(전북체육회)조는 북한 선수들에게 U대회 마스코트인 '드리미'인형을 선물로 줬다. 북한 선수들도 조선테니스협회 로고가 새겨진 페넌트를 건넸다.

그러나 정작 경기에 들어가자 한국의 김연-이안나 조는 북한 선수들을 매섭게 몰아쳤다. 한덕수 평양경공업대 선수들로 구성된 북한 복식조는 한국 선수들의 강한 스매싱에 헛손질을 하기 일쑤였다. 북한 복식조는 연식 정구에서 테니스로 전향한 지 2년이 되지 않아 한국 선수들을 상대하기엔 힘이 부치는 듯했다.

황은주-신선애 조는 서비스 포인트로 첫 득점을 하며 출발했지만 이후 스트로크 범실을 연발하며 내리 4게임을 내줬다. 두번째 세트에서도 한국은 일방적인 공세로 1게임만 내주고 경기를 마무리했다.

이안나는 "북한은 아직 정식으로 테니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실력은 보잘 것 없었지만 가능성은 엿보였다"고 말했다.

김연과 이안나는 "경기를 마친 뒤 샤워장에서 북한 선수들을 만나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두 선수는 "기회가 닿는 대로 연습경기도 자주 하며 서로 돕자고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북한의 황은주-신선애 조는 경기 직후 취재진이 첫 남북대결에 임한 소감을 묻자 "할 말이 없다"며 경기장을 떠났다.

한편 한국의 김영준(구미시청)은 앞서 열린 남자단식 3회전에서 이스라엘 몬테이루(포르투갈)를 2-0(6-3, 6-2)으로 완파하고 정상을 향해 순항했다. 그러나 여자단식의 기대주 하지선(한체대)은 카자흐스탄의 복병 마디나 라힘에게 1-2(6-3, 3-6, 0-6)로 져 2회전에서 탈락했다.

대구=특별취재반

사진=조문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