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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모든 중소협력사와 100% 현금 직거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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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SK그룹이 재하도급 거래를 전면 폐지하고 모든 중소 협력사와 직거래하겠다고 선언했다. 재하도급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개혁대상 1순위로 꼽은 ‘일감몰아주기’의 대표적인 폐해로, 대기업 중 재하도급 거래 폐지는 SK그룹이 처음이다. SK의 이번 행보가 삼성·현대기아차·LG·롯데 등 다른 대기업으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SK그룹의 지주사이자 시스템통합(SI)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SK(주)는 앞으로 모든 정보기술(IT)서비스 중소 협력사와 원칙적으로 직계약 거래를 도입하겠다고 10일 발표했다. 거래 대금도 100% 현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이는 SK그룹이 지난 8일 발표한 ‘동반성장·상생협력 확대’의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SK(주)는 ‘상생결의대회’ 직후인 9일 1차 IT서비스 협력사들에 ‘협조 안내문’을 발송하고 관련 문의 창구도 개설했다.

동반성장·상생협력 확대 후속 조치 #SK㈜, 대기업 최초 재하도급 폐지 #2차 협력업체들 신용도 상승 효과 #삼성·롯데 등으로 확산 여부 주목

대기업이 직접 모든 협력사와 계약을 맺어버리면, 1차 협력사 입장에선 그동안 2차 협력사와 계약하던 물량이 줄어 매출이 감소할 수 있지만, 그만큼 대기업의 일감이 1·2차 모든 협력사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장점이 있다. 다만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프로그램 구매 등 글로벌 기업이 포함된 거래는 직거래 대상에서 제외된다.

SK 관계자는 “대기업 입장에서는 그동안 1차 협력사에게 맡기고 신경쓰지 않았던 2차 협력사들과 직접 계약을 맺으면 일일이 관리하고 검사해야하지만, 2차 하도급 업체들은 돈을 온전히 다 현금으로 받고, 대기업과의 거래로 회사 신용도 올라가 더 많은 인재를 확보할 수 있어 장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SK(주)는 200여 개 협력사에 연간 1100억원 수준의 현금을 지급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행태 근절’ 기조와도 일치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전후 각종 간담회와 인터뷰 등을 통해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를 엄격히 제재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특히 일감몰아주기가 이뤄지는 대표적인 업종으로 SI와 물류 등을 꼽으면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대기업 계열사의 재하도급 기업으로 전락하고 그 과정에서 갑을 관계나 통행세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SI는 통합전산망 등 기업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금융·유통 등 업종에 따라 고객사가 요구하는 시스템이 달라 하도급·재하도급 업체도 다양하다. 대기업들은 계열사 정보 유출과 보안상의 문제 때문에 외부 업체보다는 자체 계열사에 일감을 맡길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도급을 거치면서 거래대금을 제때 현금으로 지급하지 않거나,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나쁜 관행이 발생해 공정위가 제재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SK 관계자는 “새 정부의 기조와 별개로 2015년 8월부터 ‘재하도급 사전승인제도’를 운영해 2차 협력사를 최대한 줄여봤더니 1차 협력사가 받는 타격이 크지 않아서 이참에 직계약제로 전환해버리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에 따르면 사전승인제 이후 재하도급 비율이 기존 10%(130여개사)에서 지난해 1.7%(20여개사)로 낮아졌다.

실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된 대규모기업집단현황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5대 그룹 SI기업 가운데 내부거래 비중은 롯데정보통신이 93.1%로 가장 높았고 현대오토에버 89.4%, 삼성SDS 87.8%, LG CNS 57%, SK(주) 45.2% 순이었다. SK(주)의 경우 유일하게 2012년 이후 매년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다.

SK(주)는 가상현실(VR)·증강현실(AR)·위치정보 등 무상으로 제공하는 정보통신기술 분야 특허도 기존 37종에서 60여 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정풍욱 SK(주) C&C사업 구매본부장은 “산업의 특성상 불가능한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IT서비스 사업 전반에 직계약 구조를 정착시켜 함께 일하는 중소기업들이 동반성장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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