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P, 연체율 24% 달하기도…시장 옥석가리기 시작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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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잘 나가던 P2P(Peer to Peer, 개인 간 대출) 시장이 위기를 맞았다. 1인당 투자금액을 1000만원으로 제한하는 가이드라인 얘기가 아니다. 투자 상품의 만기가 도래하면서 원금 상환에 문제가 생긴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연체율이 24%에 달하는 업체도 생겨났다.

1인당 1000만원 투자 제한에도 #7월 누적대출액 1360억원 증가 #경쟁 심화로 평균 수익률 14.4%↑ #신생 업체들 부동산 PF 만기 도래 #연체율 급증…24% 달하는 업체도 #“고수익=고위험, 분산투자해야”

◇레드오션의 끝판왕…17.6%가 중금리?

 9일 P2P 금융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크라우드연구소에 따르면, 7월 말 현재 P2P 영업을 하는 163개 업체의 누적 대출액은 1조5340억원이다. 누적 대출액은 전달보다 1360억원 늘었다. 올 1~5월 월평균 증가액 (1328억원)을 웃도는 수치다. 1인당 업체별 투자금액을 1000만원으로 제한하는 가이드라인이 5월 말 시행되면서 6월 대출액이 1056억원으로 줄었지만 금세 원래 성장 속도를 회복했다.

자료: 크라우드연구소

자료: 크라우드연구소

 다만, 업력이 오래되고 시장에서 검증을 받은 업체로 분류되는 협회 54개 회원사만을 대상으로 한 통계에서는 7월 대출 증가액이 1047억원으로 6월 증가액(1728억원)보다 40%가량 줄었다. 7월 협회를 탈퇴한 2개 업체의 누적 대출액(587억원)을 빼더라도 6월보다 증가세가 둔화했다. 가이드라인이 시행되면서 기존 이름이 있는 업체로 가던 자금이 신생 업체로 분산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P2P 시장의 덩치(누적 대출액)보다 더 빠르게 업체 수가 늘어났다. 특히 지난해 1월 16개이던 업체가 6월 말엔 37개로 늘더니 작년 말엔 125개로 6개월 새 3배 넘게 늘었다. 지난달 말 현재 P2P 업체 수는 163개에 이른다.

자료: 크라우드연구소

자료: 크라우드연구소

 블루오션(경쟁자가 없는 유망한 시장)인 줄 알았던 P2P 시장이 갑자기 레드오션(경쟁이 치열한 시장)으로 변했다. 레드오션에서 고래(선발 업체)가 아닌 피라미(후발 업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무기는 ‘수익률’이다. 그 어떤 광고나 마케팅보다도 투자자를 현혹할 수 있는 무기다.

 고수익을 내세워야 하다보니 후발 업체가 고른 P2P 상품 유형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다. 게다가 유난스런 한국인들의 부동산 사랑 때문인지 부동산 담보 상품에는 투자자들도 쉽게 지갑을 연다. 크라우드연구소에 따르면, 7월 말 현재 부동산 담보 P2P 누적 대출액은 9202억원이다. 전체의 60%를 차지한다. 그 가운데서도 부동산 PF 대출액이 6383억원에 이른다. P2P 대출 5건 중 두 건이 부동산PF 대출이라는 의미다.

 P2P 업체들이 취급하는 부동산PF는 주로 빌라 건축자금이다. 건물 완공 전에는 건물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으니 P2P에서 돈을 빌려 건물을 짓고, 완공되고 나면 건물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P2P에서 빌린 돈을 갚는 구조다. 대개 부동산PF 상품의 만기는 10개월 내외다. 수익률은 연 15% 안팎에 이른다.

 크라우드연구소에 따르면, 업체들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작년 7월엔 P2P 업체들이 내놓은 상품의 평균 수익률이 연 11.75%였지만 올 7월엔 14.4%로 높아졌다. 지난 5~7월 시장에 신규 진입한 업체들의 평균 수익률은 17.56%에 이른다. P2P 시장 본연의 ‘중금리 대출’이라는 취지를 무색케 하는 숫자다.

자료: 크라우드연구소

자료: 크라우드연구소


◇하이 리턴은 하이 리스크

 고수익에는 고위험이 따른다. 수익률이 이렇게 높다는 건 그만큼 손실 위험도 크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간에는 고수익 상품을 내놓는 업체들도 별 문제가 없었다. 관리가 철저해서? 아니다. 주로 취급하는 부동산 PF 상품의 만기가 돌아오지 않아서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 우후죽순 생겨난 업체들이 내놓은 상품의 만기가 최근 돌아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연체율도 높아지고 있다.

 부동산 PF를 주로 취급하는 펀딩플랫폼은 9일 현재 연체(원금 상환이 30일 이상 지연)율이 24.5%, 부실(원금 상환이 90일 이상 지연)률이 1.7%에 이른다. 펀딩플랫폼 관계자는 “PF 특성상 돌발 변수로 일시적으로 연체율이 높아진 것”이라며 “하반기 중으로 담보 잡은 토지를 매각하는 방법 등으로 원금 회수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돌발 변수를 감안해도 연체율이 두 자릿수에 이르는 건 그만큼 대출 심사를 부실하게 했거나 추심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펀딩플랫폼 관계자는 “사내외 전문가가 대출 심사를 엄격히 진행했다”며 “돌발 변수를 고려하지 못하고 대출 기간을 지나치게 타이트하게 잡은 것도 연체율이 높아진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른 업체들은 투자자에게만 정보를 공개하고 연장 대출이라는 방식으로 연체를 피해가는 꼼수를 쓰는데 우리(펀딩플랫폼)는 오히려 투명하게 모든 이들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연장 대출이라는) 편법도 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투자자들의 우려가 큰 만큼 온ㆍ오프 소통 기회를 확대하고 투자자들로 구성된 추심 위원회까지 꾸려 원금 상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부동산PF 전문 업체인 스마트펀딩은 6월 말 기준으로는 연체율이 0% 였지만, 7월 말 현재 연체율이 9.7%로 갑자기 높아졌다. 다른 P2P업체인 빌리는 연체율이 6월 말 9.9%에서 한 달 새 6.2%로 줄었지만, 같은 기간 부실률이 3.4%에서 7.9%로 높아졌다.

 업계에서는 “예상했던 일”이라는 반응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업력이 최소 1년은 넘어 사이클(상품 만기)이 한 번은 돌아야 그 업체가 얼마나 심사를 잘 해 상품을 내놓았는지, 아니면 엉터리 상품을 팔았는지를 알 수 있다”며 “지금 연체율 0%가 정말 상품이 문제가 없다는 건지, 아니면 만기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건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행 한국P2P금융협회 회장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상품은 대부분 부동산 PF 대출”이라며 “사실 지금은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 초입”이라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들이 P2P 시장을 주요한 투자처로 삼을 수 있도록 매달 회원사의 누적 대출액 및 대출 잔액, 연체율과 부실률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며 “외부 감사를 통해 수치를 제대로 밝혔는지까지 철저히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행 회장은 “본격적인 ‘옥석가리기’가 시작됐다”며 “수익률에만 현혹되서는 안 되고, 검증된 업체에 분산 투자해야 P2P 투자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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