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추적]원룸여성 폭행혐의 김광수 의원신분 노출 원인은? 휴대전화 레터링 때문으로 드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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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국민의당 의원. 오종택 기자

김광수 국민의당 의원. 오종택 기자

"왜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어서 난리냐."
국민의당 김광수(59·전주갑) 의원에게 폭행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 A씨(51)가 경찰에서 한 말이다. 김 의원은 지난 5일 오전 2시4분쯤 전북 전주시 효자동의 한 원룸에서 A씨를 때리고 상해를 입힌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해외 체류 중인 김 의원이 귀국하면 경찰 수사를 받게 된다.

현행범 체포 때부터 줄곧 현직의원 신원 감춰 #지구대 직원들 "국회의원인 줄 몰랐다" #경찰이 병원에 전화걸자 휴대폰 레터링에 탄로 # #여성은 지구대 조사 때 시종 '남편'이라 호칭 #출동 당시 "살려 달라"고 애원하던 여성 #경찰에선 "폭행 당하지 않았다" 말 바꿔 #경찰에 "남의 가정사 간섭 말라"호통도 #경찰 "김 의원 귀국하면 피의자 조사 예정"

"이웃집에서 심하게 부부싸움을 하는 것 같다"는 112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김 의원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김 의원은 사건 발생 당일 오후 부인 등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출국했다. 'A씨와 내연 관계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그는 "선거를 도운 지인의 자해를 말리다 벌어진 소란"이라고 일축했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9일 전북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5일 사건 발생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에게 "살려 달라"며 매달리던 A씨는 인근 서신지구대에 가서는 "폭행당한 일이 없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말은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김 의원에 대한 호칭이었다고 경찰이 전했다.

한밤중에 원룸에 함께 있던 국민의당 김광수(59ㆍ전주갑) 의원에게 폭행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A씨(51ㆍ여)가 지난 6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원룸 주차장에서 자신의 흰색 승용차 운전석에 앉아 있다. 김호 기자

한밤중에 원룸에 함께 있던 국민의당 김광수(59ㆍ전주갑) 의원에게 폭행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A씨(51ㆍ여)가 지난 6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원룸 주차장에서 자신의 흰색 승용차 운전석에 앉아 있다. 김호 기자

지구대 관계자는 "A씨가 처음부터 끝까지 (김 의원을) '남편'이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A씨는 지구대에서 이뤄진 1차 조사에서 "나는 피해 본 것도 없고 저 사람이 피해를 준 것도 없다.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의 가정사에 간섭하지 말라'는 취지의 말을 되풀이했다. 지구대 관계자는 "A씨가 이런 얘기는 했지만 조서로는 만들지 않았다"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의원도 지구대에서 인적사항을 파악할 때 이름과 주소·생년월일만 밝힌 채 직업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A씨 역시 김 의원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더구나 평소 안경을 끼는 김 의원은 경찰에 체포될 때 안경을 벗은 상태였다.

이 때문에 지구대 직원들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현행범으로 체포한 남성이 현역 국회의원인 줄 전혀 몰랐다고 한다. 미란다 원칙은 경찰이나 검찰이 범죄 용의자를 연행할 때 그 이유와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등이 있음을 미리 알려줘야 한다는 원칙이다.

[사진 김광수 국민의당 의원 페이스북 캡처]

[사진 김광수 국민의당 의원 페이스북 캡처]

지구대 직원들이 김 의원의 정체를 안 건 그가 다친 손을 치료받기 위해 오전 3시15분쯤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에 간 뒤였다. 지구대 관계자는 "한 경찰관이 김 의원에게 (조사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전화를 거니 휴대전화 화면에 '전주 완산갑 김광수 의원입니다'는 멘트(레터링)가 떠서 알았다"고 말했다.

적어도 지구대 조사 때까지 경찰 지휘부나 국민의당 쪽에서는 김 의원 사건을 몰랐다는 취지다. 이 관계자는 '현역 의원에게 수갑을 채운 데 대해 경찰 윗선의 질책이 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현장에 나간 경찰관이 판단해 (수갑 착용) 조치가 이뤄졌다. 위에서 따로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 정당한 절차를 밟아 법을집행했다"고 말했다.

김광수 국민의당 의원. [중앙포토]

김광수 국민의당 의원. [중앙포토]

지구대 측은 "당시 현장 상황이 심각했던 만큼 피해자와 가해자를 같은 공간에 두지 않고 분리 조치를 확실히 했다"고 강조했다. 경찰이 출동한 당시 두 사람만 있던 원룸에는 집기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바닥 곳곳에는 핏자국이 있었다. A씨의 얼굴에는 멍이 들었고, 김 의원은 손을 베어 피를 흘리고 있었다. 김 의원이 입은 와이셔츠도 피가 묻어 얼룩덜룩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두 사람을 순찰차 2대에 나눠 태우고 지구대로 연행했다. 두 사람에 대한 기초 조사도 시차를 두고 각각 다른 조사실에서 진행했다. 지구대에서는 두 사람에 대한 인적사항만 파악하고, 사건 경위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는 안 했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A씨에 대한 피해자 조사는 해당 원룸을 관할하는 전주 완산경찰서 형사과에서 별도의 장소에서 진행했다.

당초 형사과 직원들이 사건 발생 당일 오전 9시 넘어 해당 원룸을 다시 찾았을 때 김 의원과 A씨는 함께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방 안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다가 김 의원이 뒤늦게 나왔다. 경찰이 '피해자 조사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A씨는 완강히 거부했다. 경찰의 설득 끝에 A씨는 이날 오전 전주에 있는 모 파출소에서 피해자 조사를 마쳤다. 김 의원이 페이스북에서 한 주장과 비슷한 내용을 A씨도 경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주 완산경찰서 [사진 다음로드뷰]

전주 완산경찰서 [사진 다음로드뷰]

김 의원은 지난 6일 본인 페이스북에 "선거를 도운 지인(A씨)의 전화를 받았는데 자해 분위기가 감지돼 집으로 찾아갔다. 칼을 들고 자해를 시도하던 지인을 말리는 과정에서 소란이 생겼고 제 손가락도 깊게 찔려 열 바늘을 꿰매는 부상을 입었다"고 해명했다. 이 때문에 경찰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말을 맞춘 것 같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김 의원은 오는 13일쯤 귀국할 예정이다. 9일 기자가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그의 휴대전화는 꺼진 상태였다. A씨는 사건이 불거진 직후 해당 원룸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고 원룸 주변에 취재진이 몰리자 A씨가 극도로 부담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조희현 전북경찰청장은 "김 의원이 귀국하면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라며 "실제 폭행이 있었는지 등 사건 경위를 면밀히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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