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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도 안 나왔는데 … “통합과학 걱정돼요” 사교육 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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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11월 16일)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8일 서울 중림동 종로학원 본원에서 수험생들이 문제집을 풀고 있다. 올해 대입 총 모집인원은 34만9776명이다. 이 중 정시모집으로 9만865명(26%), 수시모집으로 25만8920명(74%)을 선발할 예정이다. [우상조 기자]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11월 16일)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8일 서울 중림동 종로학원 본원에서 수험생들이 문제집을 풀고 있다. 올해 대입 총 모집인원은 34만9776명이다. 이 중 정시모집으로 9만865명(26%), 수시모집으로 25만8920명(74%)을 선발할 예정이다. [우상조 기자]

서울 잠실에 사는 전업맘 박모(47)씨는 2주 전 여름방학이 시작된 뒤 중학교 3학년 딸을 대치동 학원에 보내 ‘통합과학’ 수업을 듣게 하고 있다. 통합과학은 문·이과 통합교육 차원에서 내년부터 고교 1학년에 신설되는 필수과목이다. 아직 교과서도 나오지 않았고 다음달 초 심의가 끝난 뒤에야 공개된다.

내년 고교 1학년 필수과목 신설 #문과는 통합과학, 이과는 통합사회 #과학 겁먹은 중3들 선행학습 확산 #“단순 지식 암기 효과 없어” 지적

박씨 딸은 매회 세 시간씩 주 2회 5주 과정의 특강을 듣고 있다. 학원에선 시중에 나온 문제집을 짜깁기해 교재로 쓴다. 박씨는 “학원이 주최하는 입시설명회에 갔더니 ‘앞으로는 통합과학이 국어·영어·수학만큼 중요해진다’고 하더라. 우리 딸처럼 과학을 어려워하는 학생은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적응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내년부터 고교에서 적용되는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2015 개정교육과정)을 앞두고 벌써부터 ‘사교육 1번지’인 대치동에서 이에 대비한 사교육이 번지고 있다.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은 문과반·이과반 사이의 벽을 낮춰 문과생도 과학을, 이과생도 사회 전반을 배우게 하는 게 핵심이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고교 1학년은 통합과학·통합사회를 주당 4시간씩 배우게 된다. 통합과학에선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 등 기존 과학 과목을 각각 배우지 않고 주제 중심으로 융합교육을 한다. 예컨대 ‘규칙성과 시스템’이란 주제에서 중력의 법칙(물리), 대기의 순환(지구과학)을 함께 배우는 식이다.

현재 중3이 치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개편안은 이달 말에나 확정된다. 하지만 대치동 학원들은 여름방학을 맞아 중3들에게 통합과학 수업을 하고 있다. 학원들은 여름방학 시작 전부터 학부모들에게 “통합과학 내신을 잘 받아야 대입에 유리하다” “수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안내해 왔다. 이들 학원은 과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주 타깃으로 하고 있다.

박씨는 “조금이라도 수업을 들어 두면 고교에 가서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학원에 등록했다. 다른 엄마들도 통합과학 강의에 관심 있어 한다”고 말했다.

중3 아들을 둔 이모(48·역삼동)씨도 “방학 직전 학원 대여섯 곳으로부터 ‘통합과학이 국·영·수만큼 중요해진다’ ‘융합적 지식을 요구하기 때문에 내용이 어렵다’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를 많을 때는 하루에 30통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문자를 받다 보니 ‘내 아이도 보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박상균 대치진로진학연구소장은 “대치동에서 평균 규모의 학원들은 대부분 관련 특강을 개설했다. 통합과학·통합사회가 내신에서 비중이 크고 수능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와 학원가에서는 향후 국·영·수만큼 시장이 커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치동 학원가의 통합과학 수업은 5~6주 과정에 50만~70만원을 받는다. 학원별로 적게는 20명, 많게는 150명을 모집했다. 대치동의 A학원 원장은 “이번 방학엔 100여 명이 통합과학을 수강 중인데 겨울방학까진 1000명으로 늘 것 같다”고 말했다.

출판사들도 시장 선점을 위해 뛰어들었다. 현재까지 5종의 통합과학 문제집과 참고서가 출판됐다.

교사들은 무리한 선행학습의 부작용을 우려한다. 강현식(물리) 서울 동북고 교사는 “통합과학에서 무엇을 배울지 아직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선행학습은 지식 암기 등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사는 “통합과학은 실험·발표·토론 등 학생 참여 활동 위주로 한다는 취지인 만큼 학원 측 홍보와 달리 교과서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본다. 미리 대비한다면 중학교 과학을 충분히 복습하고 기초를 탄탄히 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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