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팔긴 아깝고 돈은 없고 … 테슬라, 고금리로 급전 조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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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기업 가치가 가장 높은 자동차 회사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테슬라 시가총액은 592억 달러(약 66조원)를 기록했다. 100년 넘는 역사의 제너럴모터스(514억 달러)나 포드자동차(433억 달러)보다 높게 평가받고 있다.

시총 66조원이지만 곳간은 비어 #생산설비 투자 위해 회사채 발행 #위험도 감안해 연리 5%선 유력 #언론선 “정크본드 시장 데뷔” 평가

미래 가치를 후하게 인정받는 것과 달리 현재 테슬라의 행보는 순탄치 않다. 매출과 주가는 상승세지만 아직 이익을 못 내고, 현금 흐름은 마이너스다.

이런 테슬라가 신차 대량 생산을 위한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채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하자 월가가 그 속내를 알아보기 위해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다.

모델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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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가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사채(CB) 외에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테슬라는 7일(현지시간) “채권시장에서 15억 달러(약 1조7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테슬라는 “첫 대량생산 모델인 ‘모델3’ 생산 및 판매를 위해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공식 출시한 ‘모델3’는 기존의 고급 전기차 모델인 ‘모델S’ ‘모델X’ 의 절반 가격(3만5000달러·약 4000만원)에 한 번 충전으로 354㎞ 주행 가능한 성능으로 주목받았다. 예약금 1000달러를 내는 사전 예약 수량이 50만 대를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테슬라는 내년까지 연 50만 대, 2020년까지 100만 대 생산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지난해 총 생산량은 8만4000대. 생산능력을 2년 만에 6배, 4년 만에 12배로 키우는 프로젝트다.

관심은 회사채 금리다. 블룸버그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테슬라가 5%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하는 방안을 투자자들에게 타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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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 바클레이 인덱스’에 따르면 ‘정크 등급’ 기업이 발행하는 채권의 연 이자율이 5.4% 수준이다. 때문에 월가에서는 테슬라의 채권을 위험도가 높은 정크본드로 취급하고 있다. 미국 언론은 ‘테슬라가 정크본드 시장에 데뷔했다’고 평가했다.

정크 본드는 신용등급이 낮은 고위험·고수익 채권이다. 일반적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를 가리킨다. 원리금 상환에 대한 위험이 큰 만큼 금리가 높다.

테슬라의 채권 발행 소식에 신용평가 회사들이 신용등급을 부여했다. 채권의 신용등급은 발행 기업이 부도나지 않고 이자를 제때 지급할 수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매겨진다. 무디스는 테슬라의 채권 발행에 ‘B3’ 등급을 부여했다. 이는 투자적격 등급(Baa3)보다 6단계 아래이다.

테슬라는 종전에는 증자 또는 전환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마련했다. 주가도 올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자기 지분을 팔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그런데도 테슬라가 회사채 발행을 택한 것을 두고 머스크가 절묘한 수를 뒀다는 평가를 한다. 테슬라 주가는 올해들어서만 67% 올랐다. 뉴욕타임스는 “테슬라 주식 500만 주를 팔면 같은 금액인 15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현재 20.4%인 머스크의 지분율은 3%포인트 감소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머스크가 주식 매각 대신 빚을 지는 쪽을 택한 건 앞으로 보급형인 ‘모델3’의 생산이 궤도를 타면서 회사의 성장 속도가 빨라져 주가가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더구나 회사채 금리 5%는 테슬라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게 월가의 시각이다.

하지만 테슬라의 회사채가 잘 팔리지 않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테슬라의 전환사채에 투자한 경험이 있는 투자자 잭 플래허티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투자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지만, 현금 흐름이 마이너스인 회사에 10%도 안 되는 금리를 받고 투자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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