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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수사기술 보이라―KAL기 사건과 「마유미」 수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선거 열기로 관심의 초점에서 잠시 떠나 있던 KAL기 사건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었다. 이 사건의 진범으로 보이는 자칭 「하치야·마유미」의 신병이 자살한 「하치야·신이치」의 시체와 함께 우리 측에 인도됐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마유미」는 음독후유증과 충격 등으로 보행이 어려울 정도였으나 이제 단독보행이 가능할만큼 회복되어 심문을 할 수 있게되었고 실종됐던 KAL기 잔해 50여점도 도착했다.
이를테면 이 사건수사에 필요한 진범과 물증이 확보된 셈이다. 문체는 수사를 얼마나 완벽하게 해 궁금증을 푸느냐만 남았을 뿐이다.
이 사건에 대한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어있고. 바레인으로부터 「마유미」를 어렵사리 인수한 마당에 폭파범이란 사실을 명쾌하게 입증하지 못할 경우 곤혹스런 입장에 처해질 것은 자명하다.
더구나 「마유미」가 진범이란 확신을 아무리 갖고 있더라도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하지 못할 경우 장기 구금 등 국가적 체면이 손상될 우려마저 있다.
이처럼 이번 수사는 북괴의 악랄하고 음흉한 테러공작의 베일을 벗기고 흉계와 만행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보이는 우리 경찰의 명예가 걸린 수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마유미」에 대한 수사는 고도의 수사기술이 따라야 하고 철두철미 교과서적 수사이어야 한다. 선입관이나 예단은 금물이며 수사를 원점에서 시작하는 자세여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 나타난 각종 정황 증거로는 북괴의 소행이 거의 틀림이 없어 보인다. 이들의 행적과 독극물, 위조여권, 화약반응, 「마유미」의 팬티에 별도의 주머니가 달려 있었던 점등은 좋은 정황증거다.
그뿐 아니라 바레인 수사기관에 국적과 신분을 끝내 밝히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했던 「마유미」가 한국행을 알리자 무심결에 우리말을 한 것으로도 모든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수사원칙에서 보면 이는 어디까지나 유력한 용의자일뿐 움직일 수 없는 범인으로 단정할 단계는 못된다. 진범으로 굳혀지자면 우선 「마유미」로부터 임의성 있는 자백을 얻어 내야하고 자백을 뒷받침하는 최소한의 직접 증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물론 자백이 「증거의 여왕」인만큼 임의성이 확보된 검사 앞에서의 자백이면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이 「마유미」를 기소하고 공개 재판을 하게 되면 수많은 내외기자들과 방청인들이 몰릴 것이 뻔한데 「마유미」의 자백 외에 증거가 밑받침되면 그것보다 명쾌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KAL기가 폭약에 의해 폭파되었다는 것부터 밝혀내야 한다.
또 「마유미」의 배후세력과 조직은 물론 신원과 범행 동기 등을 극명하게 들추어내야 한다. 그렇게 하자면 홍콩과 일본, 유럽 등 여러 나라와의 긴밀한 수사협조가 선결 조건이다. 일본은 이번 사건으로 인한 한일 감정 등을 고려, 되도록이면 발을 빼려고 소극적인 인상을 주어왔는데 수사에 보다 협조하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수사는 이제부터다. 있을 수 있는 자해 행위도 경계하고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냉정하게 진행해주길 바란다. 수사의 성공여부가 북괴의 또 다른 만행을 막고 수많은 희생자들의 원혼과 가족들의 슬픔을 달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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