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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동차업계 8월 위기설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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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출의 30%를 담당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에 위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따른 판매 부진, 노조의 파업,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 이어 통상임금 소송까지 맞물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41부(부장판사 권혁중)는 오는 17일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1심 판결을 내린다. 기아차 노조 등은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해달라”고 두 차례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17일 기아차 통상임금 선고 예정 #기아차 패소 시 3조1000억원 토해낼 판 #한국GM·현대제철 등 다른 소송에 영향 #“부품업체로 부실 전이해 산업 경쟁력 하락” #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7일 “한국 자동차 산업의 명운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기아차 통상임금 관련 판결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평가했다.

근로자들이 받는 월급 중 통상임금으로 분류하는 항목이 중요한 이유는 통상임금이 법정수당(연월차·연장근로·휴일수당 등)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사측이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각종 수당도 덩달아 금액이 커진다.

만약 기아차가 이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경영에 상당한 부담을 줄 정도로 지급 금액이 많다. 기아차 노조가 제기한 집단소송에 따르면, 2008년 8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3년 동안 받았던 연 750% 상당의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기아차는 조합원에게 6869억원을 추가 지급해야 한다. 2011년 10월~2014년 10월 지급한 임금에도 별개 소송이 걸려 있는데, 기아차가 패소하면 약 1조100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 또 통상임금은 퇴직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데, 회계평가 기준상 퇴직계정에도 별도의 금액을 추가로 쌓아야 한다.

이를 종합하면 기아차는 최대 3조1000억원의 비용(2015년 12월 기준)을 토해내야 한다. 기아차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7868억원. 추가지급액(3조1000억원) 중 절반만 충당금으로 쌓아도, 기아차는 곧바로 적자 기업으로 전락한다.

같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인 한국GM 노조도 마찬가지다. 기아차가 패소하면, 같은 이유로 계류 중인 한국GM도 패소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GM이 2012년 실적을 집계하면서 통상임금 소송 패소를 대비하기 위해 쌓았던 3년 치 충당금은 7893억원이었다. 기아차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GM도 3조5000억원가량의 금액을 충당금으로 쌓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지난해 한국 완성차 5개사가 벌어들인 돈(7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금액(6조6000억원)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통상임금이라는 ‘화약고’는 현대차그룹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아차가 현대차와 연구개발(R&D)을 공유하고, 계열사를 통해 부품·자재를 구매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금속노조는 2008년부터 현대제철·현대로템 등 현대기아차그룹 13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29건의 통상임금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한장현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통상임금은 기아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동차 산업 전반에 걸친 문제”라며 “기아차가 감내하기 어려운 조 단위 손실을 기록한다면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로 부실이 전이돼 부품 공급망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완성차 제조사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 내 반한(反韓) 감정 확산으로 지난 3월부터 판매가 급감했다. 상반기 중국 시장에서 현대기아차 판매대수가 47% 감소하면서 영업이익도 현대차 16.4%, 기아차는 44% 줄어들었다.

상황이 이런데 현대차는 파업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7일 쟁의조정위원회에서 현대차 노조는 10일·14일 각각 4시간씩 부분파업하기로 했다. 6년 연속 파업을 결정한 것이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 24차례 장기파업하면서 3조1000억원(14만2000여대 생산 차질) 규모의 생산차질을 기록한 바 있다.

김범준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당장 ‘위기’라고 보기에는 섣부른 상황일 수 있지만, 경고등이 켜진 것은 분명하다”며 “자율주행차 등 미래 기술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 대규모 충당금을 쌓는다면 기업 성장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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