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온라인 명의 도용, 정부 대책은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온라인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는 무료로 몇 개월, 심지어 1년이 넘게 사용하다 어느 시점에서 사용자에게 사용료를 지급할 것인지 선택하게 한다. 물론 돈을 내고 싶지 않으면 게임을 그만두면 된다. 공산품에 비유하자면 자동차를 무료로 몇 달 동안 타다 마음에 들면 돈을 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대로 회사에 반환한 뒤 다른 무료 자동차로 갈아타는 것이다. 이 점에서 온라인게임을 제조업 마인드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온라인게임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하나의 숙명을 안고 있다. 그것은 익명성과 해킹의 가능성이다. 온라인 비즈니스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다수를 상대로 한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타인의 정보를 사용해 접속할 수 있다. 여기에다 온라인게임은 국경을 넘어선 글로벌 접속이 가능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국내 게임사는 해외로부터의 서버 접속을 차단하고 있으나 가상IP를 사용해 접속할 경우 현실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최근 엔씨소프트의 리니지에 대한 대규모 명의 도용은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교묘히 악용한 사례다. 엔씨소프트에서는 리니지에 대한 3일의 무료 사용 기회를 주고 있다. 이는 사용자들이 3일 동안 제품을 사용해 보고 마음에 들면 유료 사용으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대로 게임을 그만둘 수 있는 제도다. 여기서 중국 유저들이 대량으로 타인의 명의를 무단 도용해 계정을 만들어 낸 것이다.

엔씨소프트가 가진 실명 확인 시스템은 다른 게임사나 인터넷 비즈니스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게임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으로서 이미 중국의 유저들이 명의를 도용해 게임에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은 크게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엔씨소프트가 반성한다고 해서 끝날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온라인게임, 아니 온라인 콘텐트 비즈니스는 모두 명의 도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 대부분의 게임사는 자본 규모가 영세해 은행이나 증권사 수준의 인증이나 해킹방지 시스템을 도입하기 어렵다. 인증 절차가 지나치게 까다로우면 사용자 이탈을 초래하기도 한다. 게임업체로선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도다.

온라인게임은 한국이 일본.중국 등 아시아 시장의 거의 대부분을 장악한 산업이다. 최근에 한국산 드라마와 영화가 한류 바람을 일으키며 아시아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지만 사실 이런 한류의 원조는 온라인게임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과 아세안에서는 라그나로크, 중국에서는 미르의 전설과 같은 한국산 온라인게임이 현지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시장을 휩쓸고 있다. 이런 상황을 우려한 중국 정부는 중국 문화 보호 차원에서 한국산 게임 진출을 견제하고 있기까지 하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기준이 나와야 할 것이다. 문화관광부는 게임산업의 진흥을 추진하고 있고, 국가정보원은 해외로부터의 해킹 방지를 맡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들 부처가 나서 딜레마에 빠진 게임업계와 협의해 적정 수준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온통 게임업체 때리기에 골몰할 때가 아니다. 온라인게임의 폐해를 줄이면서 신성장산업으로 어떻게 살려나갈지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