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 개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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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2·16대통령 선거에서 두 김씨가 군소리하기 어렵게 패배해 버리자 여야정가는 선거 후 정국에 대처하는 새로운 체제개편 바람에 직면하게 됐다.
두 김씨의 민주·평민당이 모두 두 김씨의 대통령출마라는 필요성에 맞춰 분가해 나갔던 것인데 이제 두 김씨가 어떤 형태로든 선거패배에 대한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게돼 야당가의 개편요구는 상당히 드세어질 것으로 보인다.
개편요구는 여당내에서도 제기될 것이다. 민정당은 승리했지만 앞으로의 정치적 과제를 수습해나가기 위해서도 능동적인 정국대응자세의 수립과 새로운 수혈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정당으로서는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직선제의 여러 가지 폐단, 정권의 안정성 유지 등 장기적 구도를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체제를 구축해나가야 할 상황에 부딪혀있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부랴부랴 서둘려 진척시켰던 보수연합을 보다 본격적으로 추진해 나갈 필요성도 있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수용하는 차원에서도 몇 가지 변화가능성은 생각할 수 있다. 군 출신 중심색채를 탈색시키고 문민정치의 색깔을 짙게 하는 일, 정권의 안정성유지를 위한 초당적 인사의 기용 등이 그것이다.
그러한 요구들이 우선 1차적으로 국회의원선거에서 반영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권내부에서는 애당초 국회의원 선거구를 소선거구로 조정할 때 △신정부를 강력히 지원하기 위해 국회에서 절대안정의석을 유지하고 △정치적 과오·문제성 경력이 있는 야당의원의 선거에 의한 도태 등을 내심 상정하고 있었다.
정부·여당으로서는 만약 야당이나 학생, 급진세력 등이 다시 부정선거를 시비거리로 삼아 정권에 대한 정면도전을 해 오는 등 선거후유증이 심각해질 경우 이를 수습하기 위해 국회의원선거를 조기에 치르는 방안을 강구중이다.
민정당은 원래 새 정부 출범전인 2월 총선을 주장했지만 그 시기를 가능한 한 앞당길 작정인 것 같다.
지금의 승세를 몰아 야당이 전열을 채 갖추기 전에 단숨에 승부를 결정해 버릴 심산인 것이다.
이처럼 여권이 장기적 정국운영 구도아래 당장 국회의원선거법협상을 제기하는 등 정국을 주도해나갈 채비를 갖추는데 반해 야당은 선거참패의 쇼크속에 지리감렬상태다.
두 김씨란 카리스마 아래에서 얼기설기 엮어져 지탱되던 야당의 구조가 두 김씨의 이미지가 엄청나게 붕괴되는 상황앞에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하다. 두 김씨가 선거패배의 책임을 부정선거로 돌리고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려 들지만 당장 국민에게 준 커다란 환멸을 씻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그들을 대체할 적절한 후계세력이 부상해 있는 상태도 아니다. 만약 야당이 지금처럼 사분오열된 상태에서 국회의원선거에 임할 때 과연 승산이 있을 것이냐는 현실적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야권으로서도 뭔가 대안을 서둘러 강구해내지 않으면 안될 처지다.
이미 민주당이나 평민당은 대통령선거를 치르면서 사실상 시·군·구 중심 소선거구단위의 선거대책위를 구성했었다. 두 정당이 선거과정에서 첨예하게 대립해 감정적인 응어리가 커져있는 데다가 이 시·군·구 책임자까지 모두 임명되어있는 상태에서 2개의 정당을 통합한다는 소리를 꺼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이번 선거 전후로 예상외로 이미지를 부각시킨 김종필씨의 공화당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의 부상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소선거구제화된 국회의원선거에서 또다시 민정당과 민주·평민·공화 3개 야당이 4파전을 벌이는 경우 과연 야당이 어느 정도 싸울 수 있느냐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야당의 명운조차 위협받게 될지 모를 판이다.
물론 3김씨가 이번 선거에서 특정지역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준 게 사실이다.
호남에서 김대중씨의 영향력을 벗어나 선거를 치르기는 여전히 어렵고 부산에서도 김영삼씨의 입김은 절대적이다.
그렇더라도 그런 국지적 영향력만으로 전국적인 선거를 모두 감당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이 다시 국민 앞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이 과연 남아있겠느냐는 것이다.
어쨌거나 2위를 한 김영삼씨 측에서는 민주당을 중심한 야권의 통합을 노릴 것이다. 김대중씨는 호남과 서울에서의 영향력을 들어 그의 발언권을 유지하려들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들이 이제 와서 다시 만나 연대를 모색한다는 것은 참으로 희극적으로 비칠 것이 분명하다.
이들이 부정선거투쟁을 발판으로 새로운 합종과 연형을 모색할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당분간 구심점없이 방황하기가 십상이다.
선거쇼크가 가라앉고 국회의원선거라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눈앞에 닥쳐오면 야당으로서도 분명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시기는 급박하게 다가올 것이고 그 때문에 야당은 또다시 구심세력이나 적절한 명분을 갖추지 못한 채 전투에 휘말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럴 경우 이른바 보수야당 세력은 급격히 쇠잔하고 거대한 여당과 군소야당만 존재하는 일본식의 정당형태로 편성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와 함께 주목되는 것은 이번에 중도하차 하기는 했지만 「민중후보」를 출전시켰던 급진세력의 정치화 문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들은 정치세력화하여 양내 진입을 시도해 왔었다. 이번 선거과정에서는 그들 중 상당수가 평민당 외곽지원 세력으로 떨어져나가는 등 난맥상을 보였다. 실제로 재야 세력의 상당수가 실체 없는 허울이기가 일쑤였다.
이 세력들은 「정치화」하기에는 횡적인 결속력이 너무 미약했고 종적으로는 하부지지세력을 확산시키지 못했다. 따라서 이들은 보수야당과의 연대속에서 정치적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두 김씨의 좌절과 함께 무산됐다. 그들이 다시 제도권 적인 경치세력으로 원내에 진출하거나 어느 정도 지지를 확보하는 정당으로 발전하기는 아직도 요원하다는 느낌이다. 다만 야당세력의 이합 집산 가운데서 부정선거 투쟁이 전면에 표출될 경우 그들과의 제휴를 필요로 하는 세력이 등장할 수도 있으며 그때는 그들 나름으로의 발언권을 확보하게 될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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