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에 표던진 국민 의사도 존중"|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된 노태우 후보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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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노태우 민정당후보는 별로 드러내놓고 기쁜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흡족해 하는 기색을 굳이 숨기지도 않았다.
노후보는 17일 아침에도 평소처럼 6시에 일어나 기다리고 있던 강용직 보좌역으로부터 개표상황을 보고받았다.
16일 현충사 참배를 마치고 인근 도고 온천에서 휴식을 취한 노후보는 하오 9시40분 자택으로 귀가, 가족들과 함께 TV를 통해 개표상황을 시청하다가 하오 11시30분쯤 자신의 득표수가 1백만표를 넘어서자 잠자리에 들었다.
개표상황은 노후보 가족 5명외에 처남인 김복동 전 광업진흥공사 사장과 동서인 금진호 전 상공장관 등이 함께 지켜보았다.
노후보는 17일 상오6시15분쯤 연희동 자택으로 찾아간 심명보 비서실장· 최병렬 의원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고는 『나 개인의 승리라기 보다 국민들의 승리』라고 말하고 『어깨를 천근만근 무겁게 누르듯 기쁨보다 책임감이 앞선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노후보는 이들 및 강보좌역과 조반을 들면서 『모두들 수도권을 많이 걱정했는데 서울·인천·경기지역에서 표가 많이 나뫘더구먼』이라며 『호남지역을 빼고는 골고루 득표한 것으로 나타났더군』이라고 흡족한 표정.
노후보는 상오 8시20분쯤 노모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고 당사로 나오는중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을 둘러보았다.
노후보는 사실상 당선이 확정된 속에서도 끝까지 자중의 모습을 보이라는 측근들의 권유에 따라 당초 상오 8시로 예정된 기자회견을 절대 당선 확정권인 7백50만표 획득 때까지 늦추었다.
-당선 소감은.
『우선 16년 8개월만의 첫 직선제 선거에서 국민 여러분이 이 보통사람을 선출해준데 감사드립니다. 특히 마지막 순간까지 자유롭고 공정한 절차와 방법을 통해 주권을 현명히 행사해 준 국민의 성숙한 민주역량에 머리 숙여 존경의 뜻을 표합니다.
나는 당선확정 소식을 듣는 순간 기쁨에 앞서 책임감이, 환호보다 엄숙함이 가슴에 와 닿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번 선거의 승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십니까.
『단순히 나 개인이나 민정당의 승리는 결코 아닙니다. 승자와 패자가 있을 수 없는 우리 국민의 공동 승리입니다.
무엇보다 대결과 반목의 정치적 유산을 청산하고 민주화합의 새 시대를 열 수 있게돼 기쁨니다.』
-국민들이 결국 안정이냐, 혼란이냐 중 안정을 택했다는 얘기입니까.
『그렇습니다. 국민들은 민주 개혁도 좋지만 혼란없는 나라 발전을 선택한 것입니다.』
-집권하면 시급히 해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국민의 명령인 6·29 민주개혁선언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나에게 맡겨진 대임은 안정과 민주, 그리고 국민 통합을 위한 화해입니다. 호진의 노력을 다하겠읍니다.』
-안정과 화합을 위해서는 초당적인 인재 등용, 또는 탕평책같은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읍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새 공화국, 새 정부를 민정당 단독정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적 갈등과 대립을 해소시켜 나가는 전국민의 화합 정부라고 믿습니다. 때문에 나는 야당후보들의 고견도 열심히 듣고 야당후보들에게 귀중한 표를 던졌던 국민들의 의사도 존중하겠읍니다.
한마디로 국민여망에 충실하는 길은 주저없이 택하겠읍니다.』
-정부 이양을 받기까지는 아직도 70여일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이 기간에 무엇을 할 것입니까.
『이 시기를 국가적으로 아무런 낭비와 혼란없이 슬기롭게 넘기기 위해 우리 모두 새로운각오로 임해야 합니다. 짧은 기간이나마 해묵은 증오를 떨쳐버리고 화합하는데 함께 나섭시다. 그래야만 화합도 되고 올림픽도 성공시키고 민족 통일의 터전도 닦입니다.
그렇게 돼야만 북한도 감히 정권 교체기를 틈타 올림픽을 파탄시키려는 모험을 시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인생 최고의 날인데 생생한 소감을 좀 말씀해 주십시오.
『하하…, 얼마나 우리 국민들이 이번 선거를 소망했느냐, 그러나 이제 소망의 끝이 아닌 첫걸음입니다. 40년 헌정사에서 늘 단절되어온 정치사를 잇고 후손에게 자랑할 수 있는 민주화합의 시대를 열어야한다는 국민의 엄숙한 명령으로 생각합니다. 역사와 국민의 무거운 소명에 두렵고 경허한 마음가짐이 지금의 심정입니다.』
-야권에서 선거결과에 불복하고 무효화 투쟁 움직임이 있는데….
『6·29부터 국민의 뜻을 받드는데 몸을 던진 입장입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화합과 안정입니다. 정권다툼에서 다소의 갈등도 있었으나 협조가 있으리라 봅니다. 이미 싸움은 끝났으니 웬만한 것은 포용해 나가겠읍니다.』
-후보들의 출신 지역에서 압도적 몰표가 나타나 지역감정을 다시 확인시켰는데 해소책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광주사태를 마무리 짓는 것을 위시해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지역감정 해소에 최선을 다하겠읍니다.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것이 나라에 불행을 가져다 주는 것임을 국민이 공감하고있읍니다. 모두가 성찰, 반성하는 입장에서 이를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죠.』
-노후보의 득표에 대한 평가를 해주십시오.
『유세를 통해 지나간 일들에 대해 초점을 두지 않고 우리의 미래에 대한 나의 뜻을 국민에게 펼쳤읍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안정토대 위에 민주개혁을 하자는 것이고 이 같은 소망을 위해 준비를 열심히 해왔고 뜻을 펼쳤기 때문에 국민이 공감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노후보는 그러면서 『선거에서 공약한 것을 차질없이 실천해나가기 위한 준비작업에 눈코뜰새없이 바쁠 것 같다』고 약속이행을 다짐했다. <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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