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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에서 벗어났지만 …참수 보며 자란 아이들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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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참수 영상을) 좋아했어요."

최근 락까에서 탈출한 시리아 난민들. [신화=연합뉴스]

최근 락까에서 탈출한 시리아 난민들. [신화=연합뉴스]

소년은 고향 북부 시리아에선 IS(이슬람국가)의 명령에 따라 참수 현장을 지켜봐야 했다. 지금은 고향에서 달아나 베이루트의 난민촌에서 머물고 있는 열 한 살 소년에겐 무함마드란 성만 있을 뿐 이름도 없다. 소년은 참수 현장만 열 차례나 목격했다. 범죄자를 건물 옥상에서 떨어뜨려 처형하는 모습도 봤다. IS는 처형이 끝나면 아이들을 예배당으로 불러모아 참수 현장 비디오를 상영했다. 소년은 "친구들은 그걸 좋아했다"고 말했다.

IS가 빼앗아간 유년기, 학교 대신 총 세며 셈법 익히고 #물, 식량 부족에 소아마비, 트라우마 등 시달려

뉴욕타임스(NYT)는 이처럼 IS의 통치하에 있었던 시리아 어린이들이 놀랍도록 잔인한 폭력을 경험하고 목격해야 했다고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군 등 다국적 세력이 IS의 시리아 내 최후의 보루를 탈환하면서 아이들은 이 같은 야만에선 벗어났지만 대신 또 다른 위험 앞에 놓였다고 한다.

현지 유엔 관계자 등에 따르면 IS와 대항하는 민병대 역시 소년병을 모집하고 있다. 돈과 총, 사명감 등으로 아이들을 유혹하고 있다는 것이다. IS 역시 아이들을 자살테러를 포함한 잔혹한 범죄에 동원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소아과 의사인 라쟈 샤르한 박사는 최근 IS의 지배 하에 있었던 락까에서 피난 온 유아들을 진찰했는데, 이들이 주사바늘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만 2세 미만의 아이들은 주사바늘 앞에서 팔 다리를 휘두르거나 울면서 저항하는 게 정상이지만 이들은 '당신이 원하는대로 하세요'라는 듯 가만히 있었다"면서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민주군 병사가 락까의 폐허가 된 건물 사이를 달려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민주군 병사가 락까의 폐허가 된 건물 사이를 달려가고 있다. [AP=연합뉴스]

특히 IS의 마지막 근거지였던 락까 지역의 삶은 끔찍하다. 유엔에 따르면 4월과 6월 사이에만 20만명 이상이 탈출했고, 지난달 기준 2만~5만명이 남아있다. 비영리단체 리치(REACH)가 7월 초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단 물 부족이 심각했다. 유프라테스 강까지 물을 길러 가다가 총에 맞거나 폭탄을 밟을 수 있어서다. 더러운 물을 먹고 병에 걸리는 일도 흔하다. 식량 부족도 심각해 어른들은 식사 시간에 아이들 몫을 남겨놓기 위해 가짜로 먹는 척을 했다고 한다. 그들이 구할 수 있는 음식이라곤 빵이 전부였다.

전기가 끊긴 건 오래 전이다. 발전기를 돌릴 연료가 없어서다. 위생도 문제다. IS가 땅굴을 많이 파는 바람에 하수관을 건드려 쥐떼가 돌아다니곤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6월 락까에서 소아마비가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시리아의 오랜 내전 탓에 말을 못하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등 발달장애에 시달리는 아이들도 흔히 발견된다는 보고도 있었다.

아이들은 유년을 빼앗겼다. 락까에선 시리아 내 학교들이 그러했듯 몇 년째 운영되지 않았다. IS는 학교 건물을 검게 칠했다. 아이들은 '총 하나 더하기 총 하나는 총 두 개'라는 식으로 셈을 익혔다고 세이브더칠드런의 시리아 코디네이터 소니아 쿠시는 NYT에 말했다. IS의 지배에서 벗어난 임시 캠프에서도 아이들은 검은 두건을 두르고 IS 전사처럼 놀며, IS의 선전가를 듣는다.

쿠르드족 시민이 IS와의 전투에서 희생된 친지의 무덤 앞에 섰다. [AP=연합뉴스]

쿠르드족 시민이 IS와의 전투에서 희생된 친지의 무덤 앞에 섰다. [AP=연합뉴스]

IS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소년 무함마드는 이제는 머리를 자르고 금발로 염색해 뒤로 포마드를 발라 넘기고, 알록달락한 옷을 입고 친구들과 축구를 한다. 모두 IS 치하에선 금지된 것들이었다. 평범한 소년으로 돌아온 듯 싶지만, 여전이 잠자리에 들기 전 아버지에게 참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소년에겐 너무나 익숙하고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라서다. 전쟁은 아이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의 상흔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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