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공화국 경제 치적 보고회」 앞과 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모든 일에는 공이 있고 또 허물도 있다.
특히 지난 날의 일에 대해서는 시간적·공간적「격리」가 전제되어야만 사실로서의 공과가 제대로 평가될수 있다.
따라서 아직 3공화국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정부가 10일「5공화국의 경제성과」를 서둘러 보고하고 그 공을 나누는 대대적인 포상행사를 가진것은 객관적인 「평가작업」의 하나가 아니라 현 정부를 마무리하는 「자축연」의 성격을 띤 것으로 보인다.
또 시기적으로 보아 한번쯤 중간 결산해야 할 때이긴 하지만 임박한 선거와 무관할수도 없다.
경제부처의 고위 관료들은 벌써 오래전부터 경제를 놓고 이야기할 때마다 곧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왔다.
정치나 권력구조·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경제에까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5공화국이 줄곧 자신있게 앞세우는 것은 「경제분야에서의 놀랄만한 성과」였고, 실제로 80년의 상황과 최근의 상황을 비교해 볼때 물가안정·고성장· 경상수지흑자등의 이른바 「3마리의 토끼」를 다 움켜잡은 것은 움직일 수 없는 객관적 통계로 나타나 있다.
노력의 성과를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아주 어려운 때 나타난 「3저」현상과 계속된 풍년등 운이 좋았던 덕분임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나타난 객관적인 통계수치등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자.
▲80년 각각 42.3%, 32.1%였던 도매 및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2년부터는 6년 연속 5%밑으로 억제되었다.
▲80년에는 마이너스 5.2%의 성장으로 경제가 후퇴했었으나 81∼87년간 연평균 8.9%씩의 고성장을 이룩, 경제규모는지난 7년간 약2배로 커졌다(GNP 규모 80년6백3억달러→87년 1천2백억달러 예상) .
▲80년에만 53억달러의 적자를 나타냈던 경상수지가 86년부터 흑자로 반전, 또 년말 4백68억달러에 이르렀던 총외채가 이후 감소하기 시작해 올해 말에는 3백55억달러로 축소될 전망. 또 국민저축률도 세계정상급인 36%선에 올라가 있다.
우리의 속사정을 낱낱이 들여다보기 보다는 국민경제계정상의 지표를 먼저 짚어볼수 밖에 없는 외국인들의 눈에 우리의 이같은 성과가 경이롭기까지한 연구대상감으로 비치는 것은 당연하다.
그같은 성과가 어떻게가능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올해초 워싱턴에서 세계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이 공동주최한 산업구조조정 세미나에「성공사례」를 설명해 주러 초청 받아갔던 김만제 전부총리는 간단하게 한마디로 그「비결」을 가르쳐줬다.-강력한 정치적 지도력.
한국적 경제성장의 요인에는 국민적 근면성, 탄탄한 전문관료층, 높은교육열, 때마침 불어온 3저의 순풍, 미국산업의 공동화로 생긴 거대한 수입수요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1의 우위를 지니는 요인은 바로 정치적 지도력이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관료적 해석은 비단 5공화국만이 아니라 3공화국 시절까지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를테면 최고 집권자가 경제 「테크너크래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었고 이를 강력한 힘으로 뒷받침해주었기 때문에 그같은 경제성장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해석이 옳다면 성장을 위한 「힘의결집」을 정치적 지도력에 주로 의존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간의 외형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경제분야에서조차 「큰공」 에 못지않은「큰허물」 이 널리 거론되고 있음도 정부는 인정해야만 한다.
그것도 근로자의 임금투쟁 확산이나 농민들의 시위형태로 표출되고있는 것이며, 따라서 5공화국의 경제를 정치나 사회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10일 경제기획원이 작성,보고한 5공화국 경제의 장미빛 지표들에 있어서는 또다른 각증 부정적인 지표들을 지금 시점에서 일일이 크게 내세울 필요는 없다.
올해 겪은 노사분규와 선거전의 가장 예민한「담보」로 등장한 농어촌 부채탕감문제가 그같은 지표나열을 충분히 대신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보면 우리경제는 이제 그간 정치적 지도력에 의해 지불을 유보해왔던 각종 비용들을 자칫하면「유보분」이상으로 치러야만 할지 모르며, 계속적인 성장을 위한 힘의 결집도 이제 시장원리에 더 걸맞는 방법을 따라야할 때가 되었다고 할 수있다.
따라서 10일의 보고행사는 그렇지 않아도 선거를 치르면서 정치가 국민경제의 이곳 저곳에 무거운 「족쇄」를 하나 둘 채워가고 있는 지금, 성과를 나열한 부문보다는 안정과 분배, 지속적인 성장, 대외통상마찰해소등을 강조한 앞으로의 과제 대목에 더 큰 뜻이 두어져야 할 것이다. <김수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