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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신건강 논란…환상·현실 구분 능력 결여 vs 열정적이고 솔직할 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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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호 면

“미쳤다” 남발하는 트럼프 정신건강 논란

“위대한 천재성에는 약간의 광기(狂氣)가 빠질 수 없다”고 ‘모든 학문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가 말했다.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는 ‘정치 천재’라고 할 수 있다. 일반인에게는 없는 권력에 대한 ‘미친’ 집착을 일종의 자질로 갖춰야 비로소 정치를 꿈꿀 수 있다.

모욕감 주기 좋아하는 트럼프에게 #‘미쳤다’ 소리 안 들은 명사 드물어 #정신질환 사유로 쫓겨날 가능성도 #정신의학·심리학 학회까지 연루돼 #1973년 ‘골드워터 규칙’ 두고 고민 #10월 정신상태 진단 책 출간 예정

‘미쳤다’는 말은 일상언어 생활에서도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머리끄덩이 잡는 일이나 주먹이 오가는 걸 각오해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젠틀맨의 세계인 정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세계의 민주주의를 선도해야 할 입장에 있는 미국 정치권에서 ‘미쳤다(crazy)’는 말이 서슴없이 난무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걸핏하면 정적들이 ‘미쳤다’는 트윗을 쏘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신의학·심리학의 관심 주제다. 심리학자 피터 콜렛에 따르면 트럼프가 어려운 내용을 말할 때에는 청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려고 입술을 동그랗게 만들어 내민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정신의학·심리학의 관심 주제다. 심리학자 피터 콜렛에 따르면 트럼프가 어려운 내용을 말할 때에는 청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려고 입술을 동그랗게 만들어 내민다. [AP=연합뉴스]

NYT, 트럼프 막말 리스트 집계 중

뉴욕타임스(NYT)에는 “트럼프가 트위터로 모욕한 사람·장소·사물” 목록이 있다. 현재까지 351개 대상이 트럼프의 욕설을 들었다. 버락 오바마, 버니 샌더스, 젭 부시, 테드 크루즈도 ‘미쳤다’는 트럼프의 평가를 받았다. 그의 타깃에는 언론인도 포함된다. MSNBC 앵커 미카 브레진스키에게는 ‘IQ 낮은, 미친 미카’라는 트윗을 날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못마땅한 인물들도 ‘트럼프야말로 미쳤다’고 응수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능하고 법안 통과 과정에 대해 무지하고 한마디로 ‘미쳤다’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의 앨 프랭큰 상원의원은 3월 트럼프가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니다”며 자신뿐만 아니라 공화당 의원들마저 그렇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하워드 딘 전 민주당 당의장(2005~2009)은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정신의학의 도움이 절대 필요하다”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대선후보와 러시아가 어떤 관계인지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이 조사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압력에 대한 반응으로 나온 말이다. CNN은 28일 지난 한 주를 정리하는 분석기사로 “도널드 트럼프의 미친, 기괴하고 완전히 처참한 한 주”를 내보냈다.

3월 7일 예일대 로스쿨 학생인 새뮤얼 브레이드바트와 비나이 나약은 시사주간지 ‘타임’에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 절차 없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기고문을 실었다. 정신질환이 미국 수정헌법 제25조 제3, 4절의 ‘대통령의 직무불능’에 해당한다는 논리다.

트럼프를 ‘정신병자’로 몰아 취임조차 못하게 하려는 시도는 그의 당선인 시절에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하버드대 의대와 캘리포니아대 소속의 정신의학자 3인은 “과대망상, 충동성, 비판에 대한 과민반응과 환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 결여”를 이유로 트럼프가 정신감정을 받게 해야 한다는 편지를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들은 미국 정신의학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학자였다.

논란을 자초한 것은 어쩌면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윗 정치’뿐만 아니라 ‘악수 정치’도 기이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는 두 차례 악수에서 기싸움을 벌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는 19초간 긴 악수를 나눴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최고지도자인 그가 세계 지도자들 중에서도 자신이 ‘알파 메일(alpha male)’이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까. 뭔가 이상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AP=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AP=연합뉴스]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아마추어들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건강 해부에 몰두하 고 있다. 그들은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5(DSM-5)』를 샅샅이 뒤져 트럼프에게 해당하는 게 없는지 살핀다. 미국정신의학회(APA)가 내는 『DSM-5』는 전 세계에서 정신질환 진단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문헌이다. 그에게 단골로 지적되는 항목은 ‘자기애성 인격장애(NPD)’다. 병적인 나르시시즘이다. NPD가 있으면 자신이 중요하다고 확신하며 성공에 집착한다. 남을 이용하고 공감 능력은 결여된다. 거만하고 질투심이 강하다.

공격의 선봉에 선 인물은 존 D 가트너다. 우리말로 번역된 『조증(燥症)』의 저자인 가트너는 존스홉킨스대 의과대학 정신과 임상 교수다. 가트너는 트럼프가 “위험할 정도의 정신질환이 있고 성질상으로도 대통령직 수행 능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트럼프가 트윗에서 자신의 취임식에 모인 군중이 오바마 때보다 많았다고 자랑한 데 대해 가트너는 트럼프가 과대망상이나 공상허언증에 해당된다고 본다. 가트너는 트럼프가 ‘악성 자기애(malignant narcissism)’에 해당된다고 주장한다.

악성 자기애는 자기애, 반사회성 인격장애(ASPD), 공격성, 사디즘의 혼합으로 정의된다. 악성 자기애는 치유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악성 자기애’를 정의한 사람은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와 『사랑의 기술』(1956)로 유명한 에리히 프롬(1900~1980)이다. ‘악성 자기애’는 『DSM-5』의 정신질환 분류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악성 자기애’의 일부를 구성하는 ASPD에는 타인의 권리에 대한 무시, 어떤 이득이나 쾌락을 위해 양심의 가책 없이 남을 착취하는 성향이 포함된다. ‘자기애성 인격장애’건 ‘악성 자기애’건 트럼프의 나르시시즘이 “장군들보다 이슬람국가(IS)에 대해 내가 아는 게 많다” “링컨 빼고는 내가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다”와 같은 발언을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다. 현재 정신건강 분야 전문가 5만8550명(관련 학위 소지자)이 ‘트럼프의 정신질환 상태가 심각하기 때문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가트너가 주도한 탄원서에 서명했다.

반론도 거세다. 모든 정신질환은 겉으로 보이는 징후가 아니라 실제로 고통을 받거나 정신적·신체적 장애가 있어야 발병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지지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열정적이며 솔직할 뿐 어떤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변호한다. 상당수 심리학자는 많은 위대한 정치가가 트럼프처럼 나르시시스트였다고 지적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행은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적 행동이라는 해석도 있다. 정치적 궁지에 몰리면 ‘폭풍 트윗’을 날려 언론의 시선을 돌린다는 이야기다.

‘나쁘지만 미치진 않았다’ 주장도

앨런 프랜시스(정신의학) 듀크대 명예교수의 다음 말은 의미심장하다. “도널드 트럼프는 사악하고 무능력하다. 나쁘지만 미친 게 아니다. 그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직에 적합한지는 심리가 아니라 정치로 따져야 한다.”

‘미쳤나’ ‘안 미쳤나’ 논란의 불똥이 튀다 보니 인간 심리를 연구하는 학회들까지 논란에 엮이게 됐다. 논란의 중심에는 ‘골드워터 규칙(Goldwater Rule)’이 있다. 배리 골드워터는 1964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다. 『FACT(사실)』라는 잡지가 “1189명의 정신과 의사가 골드워터가 대통령직에 심리적으로 부적합하다고 말한다”는 기사를 특별호에 게재했다. ‘골드워터가 자신의 남성성을 입증하기 위해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내용이 담긴 기사였다. 특히 인류를 공멸시킬 수도 있는 핵버튼을 골드워터에게 맡길 수 없다는 메시지가 핵심이었다.

사실 문제가 있는 기사였다. 설문을 받은 1만2356명 중 응답자는 2417명에 불과했다. 657명은 골드워터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또 571명은 골드워터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은 ‘응답할 수 없다’고 답했다. 골드워터는 『FACT』를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이겼다. 지금도 일각에서는 ‘문제가 있다’고 답한 1189명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리버럴(liberal)이었다고 공격한다.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가 ‘골드워터 규칙’을 채택했다. 규칙을 위반해도 회원이 처벌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십 년간 잘 지켜온 규칙이다. 이 규칙에 따르면 정신의학자들은 그들의 진료를 받지 않은 공인의 정신적인 상태에 대해 그 공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공적으로 발언할 수 없다.

미국정신의학회(APA회원 수 3만7000명)와 미국심리학회(APA·11만500명), 미국정신분석학회(APsaA·3700명)는 모두 논란 끝에 골드워터 규칙을 유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트럼프는 ‘미스터리 대통령’이다. 그가 왜 그토록 러시아에 대해 관대한지 미스터리다. 트럼프는 지난해 7월 대선 유세에서 “나는 와튼스쿨을 나왔다. 나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진 게 별로 없다. 그를 기억하는 동기는 거의 없다. 그와 친했다는 한 동문은 와튼스쿨의 트럼프를 매우 조용하고 겸손한 학생으로 기억한다. 돈의 세계와 권력의 세계가 트럼프를 이토록 시끄러운 인물로 만든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은 ‘위대한 미국’을 추구한다. 하지만 두 개의 미국이 있다. ‘리버럴 미국’과 ‘보수적 미국’이 있다. ‘리버럴 미국’은 그의 정신상태에 대해 현미경을 들이민다. 트럼프 탄핵 논란에서 그의 정신건강은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다. 올 10월 27명의 정신의학자가 트럼프의 정신상태를 진단한 책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The Dangerous Case of Donald Trump)』가 출간된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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