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기업 잘 돼야” 했지만 재계엔 연일 짐 지우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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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잘 돼야 나라 경제가 잘 됩니다.”
지난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과의 호프미팅’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건배사의 한 토막이다. 원론적인 얘기다. 하지만 ‘재벌 개혁’이 이번 정부의 상징이 된 까닭에 기업과 언론은 이 정도의 말도 새삼스럽게 받아들였다.
문 대통령은 또 “한국 기업은 기만 살려주고 신바람만 불어넣으면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다”와 같은 ‘기업 등 두들겨 주기’ 발언도 자주 했다.

청와대 호프미팅서 기업 격려 쏟아내 #하지만 최근 경제정책은 경영 옥죄기 #

취임 석 달도 안 돼 문 대통령이 달라진 건가. 하지만 최근 정부가 내놓은 일련의 기업 관련 정책은 대통령 발언이 립 서비스에 불과한 건 아닌지 의심케 한다. 기업 입장에선 양립하기 어려운 과제가 한꺼번에 주어지는 ‘상충 스트레스’에, 밀어주기보다는 옥죄는 ‘압박 스트레스’가 더해지고 있는 까닭이다.

일자리 창출을 제1 국정과제로 올려놓은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에 세제와 예산 지원까지 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고용 감소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는 최저임금을 대폭 올린 건 뭔가. 정부가 몰아붙이고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신규 일자리 창출엔 되레 마이너스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법인세는 또 어떤가. 반(反)기업정서를 자극하는 ‘초 대기업’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 부자 중에 부자에게만 세금을 더 걷겠다고 했지만 증세 효과(약 4조원 추정)에 비해 편 가르기, 사업장의 해외 이전 등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법인세율을 올리면 외국자본이 빠져나가는 상황이 생기기 쉽다”며 “주요 선진국들이 법인세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 “2ㆍ3차 협력업체들이 어려울 수 있으니 도와달라”는 문 대통령의 말도 이해하기 어렵다. 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ㆍ상생이야 당연하지만, 마치 최저임금 인상분 일부를 대기업이 메워주라는 애기로 들려서다.
아니나 다를까. 현대기아차가 500억원을 마련하는 등 2ㆍ3차 협력사 최저임금 부족분을 메워주겠다는 기업이 잇따르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과의 간담회를 앞두고 관련 기업들이 상생협력 방안 등 선물 보따리를 쏟아내는 구태도 여전하다.
이는 약한 자가 강한 자의 완력을 경험했기 때문에 나오는 자동반사다. 최저임금을 비판했던 경총이 혼쭐이 나고, 이동통신사들이 통신비 인하를 강요받는 걸 보면서 기업들은 ‘정부 말 잘 듣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란 걸 체득했다. 그렇다면 기업 팔 비틀던 과거 정부와 다를 건 뭔가.

서울시립대 윤창현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이 잘 되는 나라라면 기업 편에 서서 기업이 뭘 원하는지 경청하고 그걸 들어줘야 한다. 대통령과 기업인의 만남을 통해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경제 정책을 정비해야만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준현 기자 kim.jun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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