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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초부터 당이 총대 메고... 노무현 증세와 다른 문재인 증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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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증세 드라이브를 걸면서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핀셋증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증세가 정권의 부담이 되지 않게 신경 쓴 모양새다. 이를 두고 “노무현 정부의 증세 실패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7 국가재정전략회의 첫날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추 대표는 이 자리에서 증세를 제안했다. 왼쪽은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 오른쪽은 이낙연 국무총리. [연합뉴스]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7 국가재정전략회의 첫날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추 대표는 이 자리에서 증세를 제안했다. 왼쪽은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 오른쪽은 이낙연 국무총리. [연합뉴스]

①청와대 주도서 당·청 합작으로=노무현 정부에겐 증세 트라우마가 있다. 2005년 공시가격 6억원 이상 부동산 보유자에게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세금폭탄'이란 카운터펀치에 휘청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1월 신년연설에서 "감세 등의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근본적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라며 증세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싸늘한 여론에 부딪혀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마저 ‘증세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이며 청와대가 고립되는 양상이었다.

반면 문재인 정부의 증세론은 당·청이 공동으로 이끌고 있다. 특히 당이 총대를 메면 청와대와 정부는 짐짓 모른척하다 따라가는 모양새다. 청와대가 독주하지 않고 집권여당에게 일정부분 지분을 넘겨주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증세론이 본격화된 건 20일 당ㆍ정ㆍ청이 모인 자리에서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증세방안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다. 이튿날 문재인 대통령은 “증세를 하더라도 대상은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만 한정될 것”이라며 논의에 힘을 실어주었다. 현재 소득세율 구간 신설, 자본소득 과세 강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검토되고 있는 증세 방안을 먼저 제기하고 있는 건 민주당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청와대 부담을 덜고 당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16년 '비전 2030' 보고 회의에 참석,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중앙포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16년 '비전 2030' 보고 회의에 참석,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중앙포토]

②정권 말에서 정권 초로=노무현 정부 조세정책 첫 기조는 사실 감세였다. 노무현 정부 초대 경제수장이었던 김진표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003년 3월 법인세 인하를 공론화해 결국 법인세율을 2%포인트 인하했다. 미국-이라크 전쟁에 따른 환율 변동 폭 확대, 주가 하락, 북핵 위기로 인한 국가 신용등급 강등 등 경제 위기론이 퍼진 영향이었다.

증세론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건 집권 4년 차인 2006년이다. 이미 4대 개혁입법(과거사 청산, 국가보안법 폐지, 언론개혁, 사립학교 개혁)이 좌절돼 개혁 피로감이 커진 상태였고, 종합부동산세 반발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하던 시기였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집권 두 달 만에 증세를 내놨다. 대통령 지지율이 70% 이상으로 고공행진 중이고, 여당 지지율도 50%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정책 추진동력이 강한 시기다. 대선 과정에서 증세에 대한 일정부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도 노무현 정부 때와 다른 환경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일제히 ‘중부담 중복지’ ‘증세’ 등을 제안하며 증세 논의의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여당의 소득세·법인세 증세 방안

여당의 소득세·법인세 증세 방안

③증세 범위도 달라=노 전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인 2007년 10월 "복지 분야를 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없고 쓸 돈도 없다. '돈이 이만큼 필요할 것입니다'라고 계산서를 내놓았다가 박살나게 또 맞고 물러간다"고 말했다. 2006년 8월 제시한 '비전 2030'이 증세 논쟁으로 번진 데 따른 아쉬움을 토로한 표현이었다. '비전 2030'은 2030년까지 1100조원의 재정을 투입해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다지겠다는 중장기 전략인데 '공허한 청사진'이란 비판을 받았다. 일각에선 "보편적 증세에 대한 일반 대중의 거부감을 간파하지 못한 탓"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반해 문재인 정부는 증세 대상자를 최소화하려고 하고 있다. 현재 공표된 것으론 5억원 초과 고소득자, 2000억원 초과 대기업만을 과세 대상으로 해 전선을 좁혔다. 당 관계자는 “국민의 0.08%, 기업의 0.019%에 대한 과세인 슈퍼리치 증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채윤경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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