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깜짝 성장했지만 … 중국경제 위기감 고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3면

중국 경제가 심상치 않다. 지난 17일(현지시간) 공개된 상반기 경제성장률이 6.9%로 예상치를 웃도는 깜짝 실적을 달성했음에도 당국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23일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경제가 ‘회색 코뿔소’ 무리에 짓밟힐 위기에 처했다고 분석했다.

빚내서 성장한 대기업들 이상 징후 #정부서 돈줄 죄고 해외 M&A 통제

회색 코뿔소는 극단적인 예외 상황을 의미하는 ‘검은 백조(블랙스완)’와 달리 예상 가능하지만 아무도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초대형 위협을 가리킨다. NYT는 중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글로벌 대기업들에 최근 이상징후가 잇따르고 있다며 이 기업들이 중국 경제의 회색 코뿔소라고 지적했다.

“중국 기업들이 지금처럼 커진 것은 모두 막대한 대출 덕이다.” (민신페이 교수)

안방보험그룹, 하이난그룹, 다롄완다, 푸싱인터내셔널 등 중국 대기업들은 그동안 중국 정부와의 연결고리를 바탕으로 막대한 양의 자금을 낮은 이자로 대출받아왔다. 지난 5년 간 이들 4개 기업은 410억 달러 규모의 해외 기업들을 집어 삼키며 몸집을 불렸다.

[그래픽 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 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밖에 지난해 중국 비금융 기업들의 부채는 약 19조 달러(2경 1228조원)로 중국 GDP의 170%에 달했다.

미국 클레어몬트매키나 대학의 민신페이 교수는 “중국 정부는 기업의 성장에 불가결한 조력자였다”며 “중국 기업들이 지금처럼 커진 것은 모두 (저금리로 받은) 대출 덕분”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 같은 기업들이 규모를 크게 키웠음에도 정작 이 대출을 상환할 내실은 아직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계적 엔터테인먼트 기업 디즈니를 능가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던 다롄완다는 지난 10일 테마파크와 쇼핑센터, 호텔 등 11조원 규모의 그룹 자산 매각을 발표했다. 330억 달러(36조원)에 달하는 채무 상환을 위해서다.

2004년 동영상 스트리밍 사업으로 출발해 ‘중국판 넷플릭스’를 꿈꿨던 종합 미디어그룹 러에코도 자동차, 스마트폰 등으로 무리하게 사세를 확장한 끝에 자금난에 처해 자웨팅(賈躍亭) CEO가 물러나고 계열사 자산이 동결되는 등 수모를 겪었다.

이처럼 중국 기업들의 방만한 성장 일변도 경영으로 증시가 출렁대자 중국 정부가 칼을 빼들고 나서는 모양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시진핑 국가 주석의 지시에 따라 대기업들의 자금줄을 틀어막으며 해외 인수합병 통제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다롄완다가 2012∼2016년 진행한 외국기업 인수 가운데 6건이 당국의 투자규정을 위반했다며 국영 대형은행에 자금을 지원하지 말도록 촉구했다고 WSJ는 전했다.

“중국 기업에 보내는 미국의 메시지: 우리 기업들에서 손 떼라.” (WSJ)

이런 가운데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도 중국 대기업에 대한 경계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기업들의 무차별 인수합병(M&A)에 제동이 걸리면서 중국 기업의 해외 투자 액수는 지난해 1870억 달러(약 209조 원)에서 올해 상반기 250억 달러(약 28조 원)로 급감했다.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는 최소 5건의 중국발 M&A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엔 중국의 전자상거래업계의 대표선수 알리바바의 미국 송금업체 머니그램 인수 건도 포함돼있다. 미국인의 금융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업체가 중국 자본에 넘어가게 되면 중국발 ‘사이버 공격’의 위협이 커진다는 논리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