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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 지원금 밝히면 통신료 내려갈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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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통신 기본료 폐지 논란으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갈등을 빚었던 이동통신업계가 단말기 지원금 분리공시제를 놓고 또 한 번 들썩이고 있다.

분리공시제 다시 들고 나온 정부 #이통사·제조사 지원금 따로 표시 땐 #휴대폰 단말기 값 낮아질 가능성 #이효성 방통위원장 후보 “적극 추진” #‘1위 독주’ 시장 판도 변화 노리는 #LG전자·LG유플러스·KT는 찬성 #시민단체·소비자들 입장 엇갈려 #일부 “혜택만 줄어 든다” 우려도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19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분리공시제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 중 하나가 가계 통신비 인하인 데다 주무부처 수장 후보가 직접 의견을 밝히면서 이통업계와 휴대전화 제조사들은 크게 긴장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휴대전화를 구입할 때 다양한 형태로 ‘단말기 가격 인하’ 지원을 받는다. 이때 지원된 금액 중 이동통신사가 부담하는 돈과 제조사가 지원한 돈을 분리해 공시하는 제도가 분리공시제다. 예를 들어 90만원짜리 휴대전화를 30만원에 구입했을 경우 할인된 60만원 가운데 이통사와 삼성전자·LG전자 같은 제조사가 각각 얼마를 부담했는지 밝히자는 것이다.

[그래픽 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 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방통위가 분리공시제를 추진하는 이유는 단말기 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조사가 거액을 부담하고 있는 게 드러나면 “지원금 규모만큼 아예 단말기 가격을 낮추라”는 압박 요인이 될 수 있어서다. 소비자들이 매달 내는 통신요금에는 단말기 할부금이 포함되는데 단말기 가격 자체가 낮아지면 통신요금 부담액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업계의 셈법은 다소 복잡하고 각 사의 입장도 갈린다. KT와 LG유플러스는 기본적으로 찬성 입장이다. 두 회사는 “소비자 권익 증진을 위해 필요한 제도”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영업이익을 늘릴 계기’라고 판단한다. 투명성을 보장하는 분리공시제는 지원금 상한제를 골자로 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과 속성이 비슷하다. 이통사들은 일정 금액 이상 보조금을 주지 못하도록 제한한 단통법이 도입되자 마케팅 비용이 줄어들면서 이익이 크게 늘어났다.

반면 업계 1위인 SK텔레콤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가입자 확대를 위해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금력을 사용할 수 없어서다.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많다는 얘기다. SK텔레콤 관계자는 20일 “정부 방침이 정해지면 따를 뿐 공식적인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단말기 제조사 간에도 입장이 갈린다. LG전자는 적극 찬성한다. 삼성전자 갤럭시 시리즈의 시장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분리공시제가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KT나 LG유플러스처럼 마케팅 비용을 크게 줄여 보자는 셈법도 있다. LG전자가 최근 한술 더 떠 “제조사가 유통 대리점에 주는 판매 ‘장려금’ 정보까지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자금력이 풍부한 삼성전자가 장려금으로 시장을 점유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도 스마트폰 톱 브랜드가 된 삼성전자의 속내는 복잡하다. 국내 지원금 정보가 공개되면 해외 이통사들이 형평성을 이유로 삼성에 ‘한국 수준으로 지원금을 달라’고 주장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90% 이상을 해외에서 판매하는 삼성전자로서는 곤혹스러운 입장이 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분리공시제의 최대 수혜자가 돼야 하는 소비자들이 정작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참여연대와 녹색소비자연대 같은 시민단체들은 “단말기 값 인하를 압박할 수 있는 제도”라며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제도의 실효성에 의구심도 나타내고 있다. 단통법이 ‘호갱(호구+고객)’ 양산법이 된 것처럼, 싼값에 휴대전화를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예컨대 지금껏 단말기 한 대가 팔릴 때마다 고객에게 12만원의 지원금, 유통망에 3만원의 장려금을 책정했다면 분리공시제 도입 이후엔 지원금을 3만원으로 줄이고, 12만원 이상의 장려금을 지급할 수 있다. 제조사의 장려금은 점유율 유지와 유통망 관리를 위한 ‘실탄’이라 줄이기 어렵다. 소비자의 혜택만 줄어든다는 얘기다. 이병태 KAIST 교수는 “정부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단통법처럼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손실이 커지지 않도록 기업 간 가격경쟁이라는 골간을 유지하면서 꼼꼼한 정책을 설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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