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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열고 냉방’ 배짱 영업 여전 … 독일인 관광객 “한국 같은 나라 처음 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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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 명동의 한 화장품 매장이 냉방을 켠 상태로 영업하고 있다. 매대가 문턱에 걸쳐 있어 문을 여닫을 수 없는 상태다. [하준호 기자]

서울 명동의 한 화장품 매장이 냉방을 켠 상태로 영업하고 있다. 매대가 문턱에 걸쳐 있어 문을 여닫을 수 없는 상태다. [하준호 기자]

“오, 시원하다.” “이거 다 낭비야.” 지난 16일 오후 남녀가 서울 명동의 화장품 매장을 지나며 나눈 대화다. 날씨는 푹푹 쪘지만 명동의 공기에는 찬 기운이 묻어 있었다. 대부분의 가게가 출입구를 열어둔 채 에어컨을 작동시키고 있어서였다. 이날 명동 상가의 건물 1층에 입점한 매장 255곳 중 8곳만 문을 닫고 영업 중이었다.

산업부 실태점검 동행 르포 #상인들 “손님 끌려면 어쩔 수 없어” #시민 “그래도 전기 막 쓰는 건 낭비” #단속 중 걸리면 과태료 300만원

산업통상자원부는 17일부터 한국에너지공단·지방자치단체·시민단체 등과 전국의 주요 18개 상권을 대상으로 ‘문 열고 냉방영업’ 일제 점검에 나섰다. 서울은 강남역·홍대입구역·명동역·가로수길 상권이 대상이다. 단속이 아닌 계도가 점검의 목적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으로 최대 전력수요는 8321만㎾로 지난해 같은 날(7477만㎾)에 비해 11.3% 증가했다. 산업부는 올해 최대 전력수요가 8월 중에 8650만㎾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의 한 신발 매장이 1~2층 문을 모두 활짝 연 채로 영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의 한 신발 매장이 1~2층 문을 모두 활짝 연 채로 영업하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오후 홍대 앞 상권 실태 점검에 동행했다. ‘개문(開門) 냉방영업’을 하는 상점은 세 개 중 한 개꼴이었다. 도로변보다 좁은 길을 따라 늘어선 상가의 개문 냉방 비율이 높았다. 노란색 조끼를 입은 한국에너지공단 직원들을 보고 단속으로 오해해 급히 문을 닫는 가게 직원도 있었다.

정부는 2012년부터 개문 냉방영업에 대한 점검과 단속을 벌여 왔다. 전력수요를 잘못 예측해 사전 예고 없이 ‘순환정전’ 조치를 해야 했던 2011년 ‘9·15 정전대란’ 이후 마련한 대책이다.

가게 주인들은 개문 냉방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항변한다. 명동에서 여성 구두를 판매하는 정모(34)씨는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문을 닫고 냉방을 하던 잡화점의 매니저 서모(38·여)씨도 “입구 쪽 에어컨이 고장 나 문을 닫아놨을 뿐”이라며 “문이 닫혀 있으면 손님들이 들어오길 꺼리기 때문에 대부분 문을 열어 놓는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 관계자들이 17일 서울 마포구에서 문을 열고 냉방 영업을 하고 있는 상점에서 에너지 절약을 당부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 관계자들이 17일 서울 마포구에서 문을 열고 냉방 영업을 하고 있는 상점에서 에너지 절약을 당부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너지 절약을 위해 문을 닫고 영업해 달라”는 에너지공단 직원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이던 홍대 앞 주변 상인들의 얘기도 비슷했다.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는 장모(25·여)씨는 “문을 열고 있어야 손님이 더위를 피해서라도 매장에 들어올 것 아니냐”고 했고, 휴대전화 액세서리 매장의 한 직원은 “입점할 때부터 가게 셔터 외에 별도로 문을 달아 놓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시민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대학생 황모(26)씨는 “정부가 이런 것까지 간섭해서는 안 된다. 일방적 행정이다”고 말했다. 허모(53)씨도 “홍콩에 가보니 상가들이 다 문을 열어 놓고 영업하더라. 관광지는 봐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박모(47)씨는 “집에서는 문을 다 닫고 에어컨을 켜는데, 값싼 산업용 전기라고 막 쓰는 건 낭비다”고 말했다. 명동에서 만난 독일인 관광객은 “독일에서도 신발 매장 등에서 문 열고 냉방 하는 걸 봤지만 한국처럼 전부 열고 영업하는 건 처음 본다”고 말했다.

정성문 한국에너지공단 홍보실 부장은 “폭염이 이어지는 데다 지난해 누진제 개편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로 전력 수급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전력예비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는 등 수급 상황이 악화하면 올해도 개문 냉방영업 단속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단속기간 중 걸리면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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