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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부산시 vs 동구청, 일본 놔두고 우리끼리 '소녀상 핑퐁게임'해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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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구 일본총영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모습. [사진 중앙포토]

부산 동구 일본총영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모습. [사진 중앙포토]

“이 조례로는 부산시가 소녀상을 관리할 수 없어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지원 업무를 맡은 부산시 여성가족국장은 지난 18일 부산시청에서 기자를 만나 법조문을 거론하며 억울하다는 듯 하소연했다.

일본 영사관 앞 소녀상 두고 부산시-동구청 서로 책임 떠넘기기 #문재인 정부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재검토 표명 #일본과의 치열한 외교전 2라운드 앞두고 내부갈등부터 풀어야

그는 지난달 30일 부산시의회에서 통과된 ‘부산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안(이하 소녀상 조례)’을 문제삼았다.

조례는 공공조형물을 관리하도록 규정했는데 부산에 있는 일본 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은 공공조형물이 아닌 불법 점유물이므로 부산시가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7일 부산시의회 업무보고에서 똑같은 취지로 발언했다가 ‘시민의 열망을 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시민들이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시민들이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사실 부산 소녀상은 부산 시민 5000여명이 낸 성금 8500만원으로 건립돼 지난해 12월 31일 일본 영사관 앞에 세워질 때부터 지금껏 홍역을 겪고 있다. 처음 소녀상을 세울 때 부산 동구청 공무원들과 몸싸움도 했고 우익들이 온갖 방법으로 괴롭혔다.
결국 정명희 부산시의회 의원이 소녀상을 부산시가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자며 지난달 조례를 발의해 통과시켰다.

조례가 통과됐지만 부산시는 불법 점유물인 소녀상을 동구청이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부산시와 동구청은 양보 없이 대립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소녀상 건립을 추진한 시민단체는 부산시의 공공조형물 등록에 관한 조례가 ‘기부채납’을 전제로 하고 있다며 공공조형물 등록을 하지 않고 있다. 기부채납하면 부산시가 소녀상을 이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부산시와 시민단체의 불신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서울시는 종로구와 손잡고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보호를 위한 조례안을 발의해 추진하고 있다. 소녀상의 소유권은 시민단체에 있다고 명시해 논란의 불씨를 없앴다.

부산 동구 일본총영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중앙포토]

부산 동구 일본총영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중앙포토]

부산시가 서울시처럼 공공조형물 등록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기부채납’ 조건을 삭제하면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부산시 여성가족국장에게 조례 개정을 추진할 의향이 있냐고 묻자 “공공조형물 관리법 개정은 문화예술과 담당”이라는 기계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부산시와 구청, 시민단체가 내부 갈등을 겪으며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문재인 정부는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재검토 입장을 표명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국민 대다수가 (위안부 합의를) 정서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18일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합의안을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의 상대는 일본이다. 그런데도 부산시와 동구청은 책임 떠넘기기 핑퐁게임을 하며 우리 내부에서 소모적 갈등을 하고 있다. 일본과의 치열한 외교전에 제대로 대비하기 위해서는 내부 갈등부터 풀어야 하지 않을까.

이은지 내셔널부 기자

이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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