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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소녀상 놓고 핑퐁게임 언제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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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은지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은지내셔널부 기자

이은지내셔널부 기자

“이 조례로는 부산시가 소녀상을 관리할 수 없어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업무를 맡은 부산시 여성가족국장의 하소연이다. 지난 18일 부산시청에서 기자를 만나 법조문까지 거론했다. 지난달 30일 부산시의회에서 통과된 ‘부산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안(이하 소녀상 조례)’이 문제라는 것이다. 조례는 공공조형물을 관리하도록 규정했는데 부산의 일본 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은 공공조형물이 아니라 불법 점유물이므로 부산시가 관리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지난 17일 부산시의회 업무보고에서 같은 취지로 발언했다가 “시민의 열망을 무시한 처사”라는 말을 들었다.

5000여 명의 시민이 낸 성금 8500만원으로 만들어진 부산 소녀상은 지난해 12월 31일 일본영사관 앞에 세워질 때부터 줄곧 홍역을 치르고 있다. 소녀상을 세울 때 시민단체와 부산시 동구청 공무원들의 몸싸움이 빚어졌다. 보수 인사들의 공격도 많았다. 결국 정명희 부산시의회 의원이 소녀상을 부산시가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를 지난달 발의해 통과시켰다.

부산시와 동구청의 ‘핑퐁게임’ 대상이 된 주한 일본영사관 앞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연합뉴스]

부산시와 동구청의 ‘핑퐁게임’ 대상이 된 주한 일본영사관 앞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연합뉴스]

소녀상 건립을 추진한 시민단체는 부산시의 공공조형물 등록에 관한 조례가 ‘기부채납’을 전제로 하고 있다며 공공조형물 등록을 하지 않고 있다. 기부채납을 하면 부산시가 소녀상을 이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부산시와 시민단체 간 불신의 골은 이미 깊어졌다. 서울시의 경우 종로구와 손잡고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보호를 위한 조례안을 발의했다. 소녀상의 소유권이 시민단체에 있다고 명시해 논란의 불씨를 없앴다.

부산시가 서울시처럼 공공조형물 등록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기부채납’ 조건을 삭제하면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만 부산시는 소극적이다. 부산시와 구청, 시민단체가 내부 갈등을 겪으며 우왕좌왕하는 사이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 재검토 입장을 표명했다.

위안부 문제의 상대는 일본이다. 그런데도 부산시와 동구청은 책임 떠넘기기 핑퐁 게임을 하며 소모적 갈등을 하고 있다. “위안부는 한·일 관계를 떠나서 보편적인 여성 인권의 문제다. 부산시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고, 현 정부는 2015년 12·28 합의문에 구속되지 말고 일본 정부의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일침을 부산시와 동구청은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이은지 내셔널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