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수원 경영진의 깊은 고뇌를 새겨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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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을 둘러싼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의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아 온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경영진이 원전 공사의 영구 중단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관섭 한수원 사장은 그제 기자간담회를 열어 “한수원이 이미 투입한 돈이 1조6000억원이다. 경영진은 신고리 5, 6호기를 계속 짓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영구 중단을 막기 위해 적극 방어하겠다”고 경영진의 뜻을 공개했다. 한수원 경영진은 지난 14일 호텔에서 날치기 이사회를 통해 공사 일시 중단을 의결했다.

하지만 이 사장은 간담회를 통해 일시 중단을 의결한 이유와 영구 중단에 따른 문제점을 토로했다. 그는 먼저 “공사 일시 중단을 의결한 것은 협력업체 손실을 줄이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공론화 과정을 피할 수 없게 된 만큼 소모적인 논란이 장기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공론화위원회 결정에 따르겠지만 한수원 경영진은 영구 건설 중단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원전 건설이 영구 중단되면 수출에 영향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미국·영국·중국 등 강대국들이 원전 증설 러시에 나선 만큼 건설 중단은 원전 수출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뜻이다. 공사 영구 중단 시 배임죄를 피하기 어려운 것도 한수원의 고민이다.

이 같은 입장에 따라 한수원은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공론화 기간 중 최선을 다해 원전의 안전성을 알려 나가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한수원이 탈원전에 방점을 두고 있는 문재인 정부로부터 부당한 압력을 받아선 안 된다. 정부는 오히려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공론화 과정에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야 백년대계의 에너지 정책이 밀실에서 날치기 처리되는 기가 막힌 사태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