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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입학사정관제 ‘무관용주의’ … 허위 사실 기재한 고교엔 학생 추천권 박탈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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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학들이 시행 중인 학생부종합전형은 미국 대학들의 입학사정관제가 그 모태다. 미국 대학들이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 것은 20세기 초다. 주요 사립대에 유대인의 입학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자 성적만으로 신입생을 뽑는 방식에 대한 주류 백인 사회의 비판이 거세졌다. 그러자 대학들은 선발 과정에 성적뿐 아니라 예술·체육·봉사 활동 등 인성과 잠재력·끼를 보는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했다. 초기에는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 의도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종·계층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적극적 배려(Affirmative Action) 정책이 함께 적용됐다.

대학 홈피에 평가기준 모두 공개 #고교 찾아 원하는 인재상 설명회 #지원 학생 SNS에 올린 내용 살펴 #인종차별·성적비하 발언자 걸러내

미국은 대학에 대입 자율성을 보장하고 중앙정부가 개입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입학사정관제는 입학 경쟁이 치열한 소수의 명문 사립대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사정관들이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고비용 전형 방식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경쟁률이 2대 1이 넘는 대학은 14%에 불과한데 사정관제를 도입한 대학은 그 비율이 더 낮다. 전체 대학 중 절반은 고교 성적과 국가 수준의 표준화 시험(SAT·ACT 등) 점수로 선발하고, 25%는 ‘모든 지원자를 합격(Open Admission)’시킨다.

미국 입학사정관제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제도의 투명성이다. 대학은 홈페이지를 통해 전형 절차와 기간뿐 아니라 입학 요구 조건과 기대 사항까지 명확하게 공개한다. 둘째, 엄격한 ‘무관용주의(Zero Tolerance)’를 적용해 사회적 신뢰도를 높인다. 지원자들이 서류 마지막 부분에 허위 기재가 없다는 서명을 하게 하고 허위 사실이 발견되면 입학을 취소한다. 추천서에 허위 사실을 기재한 교사가 발견되면 해당 고교의 학생 추천권을 박탈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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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대학은 주기적으로 원하는 인재상과 평가기준 설명회를 열고 직접 고교를 방문해 소통의 기회를 갖는다. 하버드대의 사정관이 합격생을 배출한 우리나라 고교를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넷째, 사회적 변화 추세를 반영해 평가기준을 개선한다. 최근에는 사정관제 신입생 선발 과정에서 개별 학생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 내용을 점검해 ‘디지털 시민의식(Digital Citizenship)’ 수준을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하버드대가 페이스북을 통해 부적절한 대화를 한 입학 예정자 10여 명의 입학을 취소한 게 대표적이다. 해당 학생들은 비공개 채팅방을 통해 성(性)적 비하나 인종차별 등의 내용으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예외 없는 무관용주의를 적용해 입학을 취소함으로써 향후 유사한 일이 벌어질 수 없도록 예방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학종 경험이 짧은 국내 대학들은 미국 대학들처럼 제도의 공정성·객관성·신뢰성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무리하게 양적 확대를 추진하기보다는 현재 수준에서 내실을 다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교는 교육을 정상화시키고 대학은 인재상에 맞는 신입생을 선발한다’는 학종의 취지를 살리려면 노정된 문제점을 보완해 사회적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급하게 서두를 일이 아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