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스타 포기하고, 저녁이 있는 삶 택한 카탈루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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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는 오후 2~5시 시에스타(낮잠)을 즐기고, 카페에서 긴 점심시간을 즐기는 이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스페인에서는 오후 2~5시 시에스타(낮잠)을 즐기고, 카페에서 긴 점심시간을 즐기는 이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스페인 북동부 자치지방인 카탈루냐가 시에스타(낮잠)를 버리고 ‘저녁이 있는 삶’으로 근로 패턴을 바꾸는데 한 걸음 다가섰다.

시에스타 문화 이면엔 장시간 근로 부작용 #70년전 히틀러에 충성하려다 근로시간 길어져 #시에스타 없애고 오전 9시~오후 5시 근무제로

17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카탈루냐의 110개 기업 연합, 노동조합, 교육그룹 단체, 사회활동가 등이 일일 근로시간을 줄이는 ‘근로시간 개혁 협약’에 서명했다.

카탈루냐뿐 아니라 스페인 사람들은 통상 오전 9시에 업무(일과)를 시작해 정오께 짧은 커피타임을 갖고 오후 2시까지 일한 뒤 4~5시까지 이어지는 긴 점심식사를 즐긴다. 이어 업무에 복귀해 오후 8시 또는 더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근로 패턴이 이렇다보니 하루 11시간가량을 회사에 머물게 된다. 늦은 귀가로 저녁은 오후 9시께 먹게 되고, 가족과 함께할 시간은 줄며, 자정 넘어 잠자리에 드는 이들이 많다.

점심시간 낮잠을 즐기는 시에스타(Siesta) 휴식문화로 유명한 스페인이지만, 알고보면 장시간 근로에 허덕이고 있는 셈이다. 스페인에선 이같은 근로 패턴이 70년 이상 지속돼왔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 [가디언 캡처]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 [가디언 캡처]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1942년 독일 히틀러정권에 대한 충성으로 표준시간대를 독일에 맞추면서다. 이전까지 스페인은 영국ㆍ포르투갈 등과 같은 시간대였지만 독일과 똑같이 1시간 앞당기면서 근로시간이 길어지는 계기가 됐다.

이런 배경 탓에 과거 청산을 위해서라도 근로 시간대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고, 3년 전 카탈루냐에서 가장 먼저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카탈루냐는 2018년 9월부터 근로 시간대를 오전 9시~오후5시로 바꿀 계획이다. 기존의 점심시간을 대폭 줄이고, 퇴근시간을 앞당기는 것이다.

근로시간 개혁 운동단체의 파비안 모에다노 대변인은 “근로시간 개혁은 이제 삶의 질과 관련된 문제가 됐다”며 “장시간 근무패턴으로 인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적어졌고, 특히 방과 후 자녀들을 잘 돌보지 못하는 폐해도 심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스페인 사람들도 여느 유럽인처럼 이른 아침 밥을 먹고, 12시엔 점심을, 7시엔 저녁을 먹는 생활 패턴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말 스페인 고용부장관도 근로 시간대를 오전 9시~오후 5시로 바꾸는 방안을 발표했다. 스페인 정치권은 현재 관련 법안을 입법화하기 위해 의회에서 논의 중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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