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독·일선 공사 전 공론조사 … 29% 진척된 원전 중단 드문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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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원전 전면 중단, 40년 후 원전 제로 국가로 탈(脫)원전 로드맵 마련.’

문 대통령 공약대로 탈원전 선언에 #정부, 25일 만에 서둘러 중단 결정 #한수원 이사 13명 중 1명만 반대 #업계 “안전문제 있을 때만 중단해야” #산업부 “에너지법상 문제 없어”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이 같은 공약을 내세우며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 중단을 약속했다. 지난달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선 “신고리 5, 6호기의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도 ‘속전속결’로 움직였다. 같은 달 27일 국무조정실이 신고리 5, 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공론조사로 영구 중단 여부를 결정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14일 오전 경주의 한 호텔에서 이사회를 기습 개최해 공사 일시 중단을 결정했다. 문 대통령의 선언 후 25일 만이다.

13명의 한수원 이사 중 일시중단에 반대한 인사는 조성진 경성대 에너지학과 교수 1명뿐이다. 조 교수는 이사회에서 “1983년 이래 원자핵 전공 교수로서 연구와 교육에서 얻은 경험에 따라 현재 논의되는 탈원전 정책을 납득할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한수원의 공사 일시중단 이유는 ‘국민 우려 해소’와 ‘공론화의 중립성 확보’다. 한수원은 이날 “이사회 긴급 개최로 신뢰성 훼손도 우려했지만 공론화로 국민 우려를 조속히 해소하는 게 바르다고 봤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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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업계는 일시중단의 법적 근거가 약하다고 주장한다. 공사 중단은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허가 절차나 기준 또는 안전에 문제가 있을 때’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명령해야 한다. 법적 근거가 없는 공사 중단 결정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산업부는 에너지법 4조 3항 “에너지 공급자는 국가의 에너지 시책에 적극 참여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들어 일시적 공사중단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무조정실은 공론화 위원회 위원장을 포함해 총 9명의 위원 선정 작업을 다음주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문제는 건설 중인 원전의 중단 여부를 공론조사로 결정하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국무조정실이 참조하겠다는 건 독일의 방사성폐기물 처분 시설 선정을 위한 ‘시민소통위원회’와 일본의 2012년 ‘에너지 환경의 선택에 대한 공론조사’다.

두 사례는 결정되지 않은 정책 방향을 두고 국민의 의견을 물었다. 적법하게 착공해 28.8%나 공사를 진행한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것과는 의제나 시급성에서 차이가 크다. 3개월의 공론조사로 국민 합의 도출이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여론조사 결과는 헷갈리기만 하다. 한국갤럽의 14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에 대해 ‘중단해야 한다’는 응답이 41%로 ‘계속해야 한다’는 응답(37%)보다 많았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을 찬성한다는 응답은 59%, 반대한다는 답변은 32%였다.

3개월 내 국민 합의 도출 어렵다는 우려도

원자력 학계와 한수원 노조, 지역주민들로 이뤄진 건설 중단 반대파와 환경운동가 중심의 찬성파 간의 갈등도 크다. 공론화위원회가 어떤 결론을 내려도 양측에서 승복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일각에선 20개월의 활동으로 권고안을 만들었지만 국회에서 외면받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공론조사는 해외처럼 탈원전 정책 전반에 대해 해야 한다”며 “사업이 진행 중인 신고리 5, 6호기는 이해관계가 복잡해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신고리 5, 6호기 공사가 완전 중단되면 건설 도중에 멈추는 국내 첫 원전이 된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원전 건설 중단의 경험이 있는 나라는 대만과 미국, 필리핀 정도다. 김창락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대만을 제외하면 원전 건설 중단 사례는 1970~80년대에나 있었고 대부분 최근 들어 공사 재개나 재개 검토를 한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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