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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 날벼락' 맞은 건설노동자들 “하루아침에 실직자 신세…갈 데가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4일 오후 공사가 중단된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에 근로자들이 없어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14일 오후 공사가 중단된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에 근로자들이 없어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이달 초부터 주말 특근과 야근이 끊기면서 월급이 반토막 났다 아잉교(아닙니까?). 공사 중단 결정한 정부가 임금 보전해준다꼬? 그말 믿는 근로자 아~무도 없심더(없습니다).”

건설근로자 하루 평균 900명 근무…특수 업무여서 다른 일 할 수도 없어 #울주군 서생면 주민들 생계도 막막…3000가구 신기마을 피해 가장 커 #주민들 “법 안지키는 문재인 정부는 독재정권, 한수원은 꼭두각시” #수십 억 투자한 하청업체 부도날 판…한수원 “정부 뜻 따를 수밖에 없어”

한국수력원자력이 이사회를 열고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중단을 결정한 14일 낮 12시 30분쯤.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신리마을 앞에서 만난 건설노동자 김모(52) 씨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김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에 내려와 토목일을 하며 월 500만원을 벌어왔다. 월세 50만원, 식비 50만원, 생활비 20만원을 쓰고 남은 380만원을 대구에 있는 아내에게 꼬박꼬박 보내줬다고 한다.

그는 “7월부터 특근이 끊겨 이달에는 집에 150만원밖에 못 갖다줄 판이다. 근데 이제는 한 푼도 못받을 수 있다. 정부가 공사 중단한 3개월간 임금보전해준다고 하는데 뒤로 가서는 ‘무노동무임금’ 원칙 들이대며 임금 못주겠다고 할 게 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4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인근 도로변에 공사 중단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송봉근 기자 (2017.7.14.송봉근)

14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인근 도로변에 공사 중단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송봉근 기자 (2017.7.14.송봉근)

이날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으로 출근한 900여명의 건설근로자들은 낮 12시까지 대기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한수원 이사회 결정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지만 현장 근로자들에게 전달된 지시는 전혀 없다고 했다. 건설근로자들이 모두 빠져나간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주변은 적막할 만큼 고요했다. 10여개가 넘는 대형 크레인은 가동을 멈췄고, 굉음을 내며 건설 현장을 오가던 대형 트럭들도 볼 수가 없었다.

50여명의 일용직 건설 근로자를 고용한 ‘제일공사’ 홍모(48) 현장소장은 “토사 야적장이나 조립장에서 대기하던 근로자들이 낮 12시쯤 집으로 가는데 잡을 수 없었다”며 “아마 내일도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는 상황이 반복될텐데 출근을 막을 수도, 퇴근을 막을 수도 없어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13일 오후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을 결정할 이사회가 열리는 한수원 경주 본사 앞에서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주민들이 건설 중단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울산=연합뉴스]

13일 오후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을 결정할 이사회가 열리는 한수원 경주 본사 앞에서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주민들이 건설 중단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울산=연합뉴스]

신고리 5,6호기 공사에는 기자재 업체까지 약 760여 곳이 참여하고 있고, 하루 평균 900명의 건설근로자가 일을 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 원자력 업무에 특화돼 있는 20~30년 경력의 숙련 근로자다. 홍 소장은 “원자력은 특수 공정이어서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근로자들이 대부분”이라며 “게다가 장마와 폭염이 이어지는 7~8월은 건설 비수기여서 일자리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14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앞 주차???에 공사 중단으로 크레인 등 건설장비들이 멈춰 서 있다.왼쪽부터 신고리 3?4호기가 보인다.송봉근 기자 (2017.7.14.송봉근)

14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앞 주차???에 공사 중단으로 크레인 등 건설장비들이 멈춰 서 있다.왼쪽부터 신고리 3?4호기가 보인다.송봉근 기자 (2017.7.14.송봉근)

그는 이어 “건설근로자들이 기대심리 때문에 공론화가 진행되는 3개월간 현장에 나오기는 하겠지만 ‘무노동무임금’ 원칙 때문에 임금을 전혀 못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며 “그렇다고 다른 일자리가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정부 입만 쳐다보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일용직 건설근로자를 고용한 하청업체들은 적게는 3억원, 많게는 30억원의 투자비를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K토건 진모 씨는 “하청업체들이 원전 건설에 등록되려면 최소한 수억 원을 선투자 해야 한다”며 “법적 허가가 난 건설사업을 이렇게 갑자기 중단해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하면 부도날 판”이라고 말했다.

건설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신리마을에는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신리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46)씨는 “문재인 정부가 건설중단을 공론화하겠다고 발표할 때부터 마을 분위기가 침울해지더니 오늘 점심에는 식당에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며 “3개월 동안 당장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며 막막해했다.

13일 오후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을 결정할 이사회가 열리는 한수원 경주 본사에서 노조원들이 1층 로비에 앉아 건설 중단 반대를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다.[울산=연합뉴스]

13일 오후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을 결정할 이사회가 열리는 한수원 경주 본사에서 노조원들이 1층 로비에 앉아 건설 중단 반대를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다.[울산=연합뉴스]

울주군 서생면에 사는 3000여 가구 가운데 이주 대상에 포함됐던 신기마을 주민들의 피해가 유독 컸다. 이주 보상금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집 확장공사를 한 주민들은 공사 비용을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신기마을은 15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신기마을 주민인 이모(56)씨는 “집 확장공사를 하면 들인 비용보다 보상금이 더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떠돌면서 확장공사를 한 주민들이 많다”며 “신고리 5,6호기가 건설 안되면 확장공사 비용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다”며 억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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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군서생면주민협의회는 정부는 물론 한수원의 태도에 분통을 터트렸다. 이상대 서생면주민협의회장은 “법을 안지키는 문재인 정부는 독재정권이며, 이 정권에 한마디 말도 못하는 한수원은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며 “오는 17일까지 한수원 이사회가 어떤 근거로 공사 일시중단 결정을 내렸는지 검토해 보고, 이에 따라 고소, 고발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4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앞 주차장에 공사 중단으로 중장비 등 건설장비들이 멈춰 서 있다.뒤로 신고리 3호기가 보인다.송봉근 기자 (2017.7.14.송봉근)

14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앞 주차장에 공사 중단으로 중장비 등 건설장비들이 멈춰 서 있다.뒤로 신고리 3호기가 보인다.송봉근 기자 (2017.7.14.송봉근)

한수원은 정부 입장을 따를 수밖에 없다며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이다. 김태석 한수원 홍보실 언론홍보1팀 차장은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공사 일시 중단으로 생기는 피해를 각 관련 업체들로부터 종합한 결과 1000억원가량의 손실이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며 “아직 구체적 방안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업체·주민들과 최대한 협의해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울주=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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