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감독의 영화같은 '쉰들러 리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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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60여년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이탈리아판 '쉰들러 리스트'가 내년에 영화화된다. 숨겨진 선행의 주인공은 세계적인 영화감독 비토리오 데 시카(1901~1974.사진).

20일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에 따르면 데 시카 감독은 독일군이 이탈리아에 진주한 43년 영화 '천국의 문'을 만들면서 나치의 박해를 받던 유대인을 포함해 3백여명의 목숨을 구했다.

데 시카 감독은 당시 교황 비오 12세의 위촉으로 영화를 연출하면서 바티칸시티에 있는 성베드로 대성당에 세트장을 설치하고 독일군을 피해다니던 이들을 대거 엑스트라로 기용했다는 것이다.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시티는 독일군의 군홧발이 미치지 못해 세트장에서 숙식을 하던 난민들은 신변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데 시카 감독은 나치 독일군이 로마를 떠날 때까지 영화 제작을 끝내지 않기로 교황청과 밀약을 맺어 난민들을 보호했다.

'천국의 문'은 한 무리의 병자들이 치유의 기적을 위해 이탈리아 동부 안코나 지방의 로레토의 성지로 순례를 떠나는 내용을 담았는데 이 영화 제작 과정에서 3백여명의 목숨을 구하는 기적을 부른 것이다. 그러나 44년 2월 독일군이 세트장에 난입해 60명을 끌고 가는 불상사도 겪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 같은 데 시카 감독의 숨은 미담은 내년에 영화화되며 그의 아들인 크리스찬 데 시카(52)가 주역을 맡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스찬은 "아버지가 '천국의 문'이 흥행에 성공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이를 맡은 것은 파시스트 정권의 영화 제작에 협력하는 것을 가급적 피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계 영화사에서 전후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 영화의 기수로 유명한 데 시카 감독은 일생 동안 35편의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자전거 도둑'은 네오 리얼리즘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제네바=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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