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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No, 농사 Yes' 세 청년 농부의 세계 일주 무한도전 '파밍 보이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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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대학은 졸업했지만 평범한 회사원이 되긴 죽어도 싫었다. 유지황(31)·권두현(30)·김하석(30). 이들은 기껏 공부해 하라는 취업은 안 하고, 농사를 배우겠다며 훌쩍 세계로 떠났던 청년들이다. 경상도 출신의 세 청년 농부는 다른 나라 농장의 노하우를 배우고자, 2013년 12월부터 2015년 9월까지 약 2년간 세계를 누볐다. 무일푼으로 그들은 호주에서 투잡·쓰리잡을 뛰어가며 돈을 모은 뒤, 이탈리아·벨기에·네덜란드 등 모두 11개국의 농장을 찾아다녔다.

“취업에 목매던 친구들은 모를 걸 #땅 파고 땀 흘리며 꿈 캐는 재미” #'파밍 보이즈' 권두현·김하석·유지황

다큐멘터리 ‘파밍 보이즈’(7월 13일 개봉, 장세정·변시연·강호준 감독)는 이 세 청춘의 무모하리만치 용감한 세계 일주의 기록이다. 영화 개봉에 맞춰 잠시 서울로 올라온 그들을 만났다. 영화 속 20대 중반이던 세 친구는 어느덧 30대에 접어들어 있었다. 더욱 단단한 청년이 되어.

다큐멘터리 영화 '파밍 보이즈'의 주인공 유지황(왼쪽부터)·김하석·권두현.

다큐멘터리 영화 '파밍 보이즈'의 주인공 유지황(왼쪽부터)·김하석·권두현.

-농장에서 일하며, 세계를 돌자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지황 “대학교 졸업을 앞둔 2012년 무렵 농업에 대한 관심이 컸다. 청년 농부가 흔하지 않을 때였는데, 향후 청년 농부가 뜰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겨, 함께 자취하고 있던 후배 하석을 꾀어 농사를 시작했다.”
하석 “둘이 모은 돈으로 경남 통영에 조그맣게 땅을 임대해 피망·고추·토마토 등을 재배했는데, 돈벌이는 시원찮았다. 그러다 청년 사업 지원 관련 공모전에 채택돼, 일본 농장을 견학할 기회를 얻었다. 한 열흘 다녀왔나, 배울 건 많은데 기간이 너무 짧더라.”
지황 “궁금하더라고. ‘다른 나라의 농부는 어떻게 먹고사는 거지?’ 그래서 제대로 세계를 돌며 배워보기로 했다. 일단 돈을 모으고, 농장도 돌아볼 겸, 편도 비행기 표만 끊고 호주로 날아갔다. 각자 30만 원만 들고(웃음).”
두현 “난 나대로 농업 세계 일주를 꿈꾸고 있었는데, 어학원에 갔다가 두 사람을 소개 받았고, 중간에 합류했다.”

-남들 다 취업에 목을 매는 시기에 2년간이나 여행을 떠난다는 게 걱정되진 않았나.
하석 “대학교 졸업 즈음이라 걱정이 많았지만, 막상 떠나기로 했을 땐 맘이 놓였다. 생각해보니 내가 계속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만 살아왔더라. 유치원 때부터 어쩔 수 없이 다녔던 학교생활을 드디어 끝낸 거니까, 이제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거 해보자는 생각이 컸다. 일종의 포상 휴가라고 해야 하나.”

'파밍 보이즈' 유지황

'파밍 보이즈' 유지황

-영화 초반에도 나오지만, 호주에선 그야말로 생고생을 한다.
하석 “호주 도착해서 초반에는 자동차가 없어서 고생이 많았다. 땅덩이가 워낙 큰 나라라 차가 무조건 필요했는데, 미처 몰랐다. 일단 차가 있어야 농장도 갈 수 있는 건데.”
지황 “이력서만 내려고 해도 막 40㎞씩 차를 타고 달려야 했으니까(웃음). 결국 버티다가 중고차를 사고, 닥치는 대로 일을 시작했다.”
하석 “나는 청소부로 쓰리잡을 뛰고, 지황이 형은 투잡을 하면서 4개월 만에 1500만 원씩 벌었다. 그때쯤 필리핀 어학연수를 마친 두현이가 넘어왔고, 본격적으로 농장을 찾아다니는 로드 트립을 시작했다.”

-이동 경로는 어떻게 되나.
지황 “우선 3개월에 걸쳐 호주를 한 바퀴 돌고, 동남아로 넘어갔다. 인도네시아~베트남~라오스~태국~인도~네팔 순으로. 농장에서 일하며 숙식을 해결하고, 무상으로 봉사를 하기도 했다.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가 한 달 만인가, 다시 유럽으로 떠났다. 그 다음은 영화에 나온 그대로다.”

-그 여행 방식이 소위 말하는 우핑(WWOOFing, 농장에서 일하는 대신 숙식을 제공받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여행법인데.
두현 “저렴하게 세계 여행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농장해서 일을 하는 대신 잠자리와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이동 경비를 제외하면 거의 돈 들어갈 일이 딱히 없다.”
지황 “단순히 수박 겉핥기로 구경하고 오는 여행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땀 흘리며 생활하는 방식이니까 배우는 점도 많다.”

'파밍 보이즈' 권두현

'파밍 보이즈' 권두현

-좋게 말해 농업 세계 일주지, 과정은 거의 생고생 무대뽀 여행이던데.
두현 “호주에 있을 때부터 곳곳의 공동체 마을과 농장에 우핑 신청 메일을 보내지만, 선뜻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하석 “농장주 대부분이 연령대 높은 어르신들이라 그런지 메일을 보내도 확인을 안 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결국 직접 찾아가서 빌다시피 하며 일을 따냈다.”
지황 “‘그들과 어울리려면 그들 삶속으로 직접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절실히 느꼈다. 그렇게 몸으로 직접 겪고 나니, 일이 쉽게 풀리기 시작했다. 농장 어르신들이 노하우를 알려 주고, 다른 농장을 소개시켜 주기도 했다.”

-정부의 땅을 무단 점거해 함께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는 이탈리아 젊은이들 모습이 인상적이더라. 특별히 기억에 남는 나라와 농장이 있었나.
하석 “벨기에 여행 중에 ‘도메인 드 그록스’ 농장에서 일했는데, 청년에게 무상으로 땅을 빌려주고 유기농업을 가르쳐 주는 곳이었다. ‘자연에게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고, 우리가 누린 만큼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는 농장주 엘리자베스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셋 모두 그 말에 감동해, 여행 내내 ‘Pay Back’을 구호로 삼았다.”
두현 “네덜란드에선 ‘케어 팜’(Care Farm, 치유 농장)으로 지정된 농장에서 일했는데, 날마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환자, 교도소에서 갓 나온 전과자 등이 몰려오곤 했다. 한국 같으면 정신병원이나 전문 시설의 도움을 받을 사람들인데, 너무나 평온하게 자연 속에서 양을 키우고 농사를 지으며, 치유 받는 게 아닌가. ‘아, 이곳에서는 이렇게 열린 사고로 농사를 하는 구나’하고 놀랐다. 부모님이 농사를 하셔서 솔직히 농사일이란 게, 소처럼 일하는 게 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영화 '파밍 보이즈'

영화 '파밍 보이즈'

-농업 세계 일주를 영화를 만들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지황 “호주에 있을 때부터 세계 일주 준비 과정을 블로그(‘비상식량의 농업세계일주’)에 올렸는데, 그걸 본 제작사 콘텐츠나무에서 연락을 해왔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셀카’를 보듯 솔직하고, 가감 없는 화면들이 곳곳에 보이더라. 촬영은 뭘로 했나.
지황 “동영상 되는 것 중에 그나마 저렴한 걸로 고른 게 캐논 650D. 도중에 중고로 소니 액션캠과 작은 디카, 줌까지 되는 캠코더도 장만했다.”

-다들 촬영은 처음이었을텐데.
하석 “제작진에서 24시간 풀로 찍으라고 해서, 진짜 무작정 계속 찍었다.”
지황 “우린 다큐멘터리 영화는 무조건 다 그렇게 찍는 줄 알았다(웃음). 나중에 얘길 들어보니, 우리 영상을 다 보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다고 하더라. 영상이 모두 수십 테라바이트는 됐던 것 같다.”
두현 “그런데 정작 영화에는 제작진이 찍은 화면이 더 많이 나온다(웃음).”

다큐멘터리영화 '파밍 보이즈'의 주인공 권두현(왼쪽부터)·유지황·김하석.

다큐멘터리영화 '파밍 보이즈'의 주인공 권두현(왼쪽부터)·유지황·김하석.

-세계 일주하며 힘든 순간은 없었나.
하석 “배고픔, 언어, 육체적인 피로, 외로움 뭐 거의 모든 게 힘들었다. 그냥 놀면서 세계 일주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우린 농사도 하고 영화도 찍어야 하지 않았나(웃음).”
지황 “대판 싸우고 포기하려고 한 순간도 있었다. 제작진이 우릴 모아놓고, 다시 해보자고 설득하지 않았으면 진짜 이 영화도, 세계 일주도 못 했을 거다.”

-자신들의 영화를 본 소감은?
두현 “영화를 보는 내내 고개를 못 들겠더라. 처음 편집본에는 우는 장면이 많아서, 특히 더 부끄러웠다. 그런데 이번 개봉 버전에는 다행히 편집돼 안 나온다. 뭐, 내가 원래 잘 울긴 한다(웃음). 농장에서 헤어질 때마다 울고 그랬다.”
하석 “나도 빼고 싶은 장면이 하나둘이 아니다. 너무 까맣고 못 생기게 나왔다(일동 웃음).”
지황 “나는 우리가 영어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뜨끔했다.”
하석 “맞는 문장도 아니고, 맞는 발음도 아니지(웃음).”

-영화에서 하석이 우쿨렐레를 치며 부르던 노래는 음원으로도 나왔던데.
하석 “지황 형님은 기획자로서 능력이 있고, 두현이는 일을 엄청 잘한다. 나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늘 미안했다. 그래서 여행 도중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질 때 선물의 의미로 노래를 불렀다. 어쨌든 이제는 나름 저작권료도 받는다. 4월엔 1800원, 5월엔 2000원, 6월엔 3만3000원이 나왔다. 어쨌든 점점 오르고 있다(웃음). 어쩌면 내가 가장 큰 수혜자다. 아, 형님은 이제 곧 책이 나올 거다.”

'파밍 보이즈' 김하석

'파밍 보이즈' 김하석

지황 “농업 세계 일주, 청년 농부 등을 테마로 한 책을 썼는데, 빠르면 이달 말에 나올 것 같다. 아직 완전히 정해지진 않았는데, 책 제목에 ‘파밍 보이즈’가 들어가는 건 확실하다(웃음).”

-이제 뭐 먹고사나.
지황 “이동식 목조 주택 사업을 준비 중이다. 청년 농부들이 가장 걱정하는 게 땅과 주거, 자금의 문제다. 저렴한 집, 농사를 짓다가 임대한 땅에서 쫓겨나더라도 편히 옮길 수 있는 집을 지어주는 게 목표다.”
하석 “아이쿱 생협이라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매장의 매니저로 일한다. 믿고 살 수 있는 유기농·친환경 상품만 판매하는 착한 매장이다.”
두현 “부모님에게 독립해 딸기 농사와 벼농사를 시작했다. 돈이 모이면 케어팜처럼 사회적인 농장, 열린 농장으로 꾸리고 싶다.”

-또래 청춘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하석 “이게 비단 농사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꼭 농업이 아니어도 좋으니, 너무 정해진 길로만 억지로 가지 끌려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한번쯤은 벗어나 보는 것도 좋다. 비탈길로 가도 죽지 않으니까.”

영화 '파밍 보이즈'

영화 '파밍 보이즈'

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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