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축제가 음란하다는 건 편견”…인권위 첫 참여, 미 대사관은 '무지개 깃발'

중앙일보

입력

“성소수자들의 축제인 퀴어축제 하면 ‘음란하다’고 여기는 선입견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것이 음란한 건지 규정할 수 있나요? 단지 내게 익숙했던 개념과 이미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음란하다고 규정짓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강명진(38) 퀴어축제 조직위원장의 말이다. 강 위원장은 2001년부터 퀴어축제에 참여하기 시작해 2010년부터는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오는 14~15일 서울광장에서 개최되는 제18회 퀴어축제를 총괄하는 것도 그다.

성소수자들의 국내 최대 문화행사인 제17회 퀴어문화축제가 지난해 6월 11일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당시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들은 서울광장의 경찰 바리케이트를 둘러싸고 반대 집회를 열었다. [중앙포토]

성소수자들의 국내 최대 문화행사인 제17회 퀴어문화축제가 지난해 6월 11일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당시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들은 서울광장의 경찰 바리케이트를 둘러싸고 반대 집회를 열었다. [중앙포토]

동성애자인 강 위원장이 기억하는 제1회 퀴어축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국내 퀴어축제는 일부 성소수자 단체가 홍콩 영화 ‘해피투게더’와 같은 ‘퀴어 영화’를 편하게 볼 수 있는 공간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2000년대 초반 퀴어 축제가 영화제와 공연 중심이었던 이유다. 최근 행사의 하이라이트가 된 퀴어 퍼레이드는 당시 다른 단체가 주최했다.

“퍼레이드 장소가 대학로였는데 당일 비가 엄청 많이 내렸어요. 가보니까 우리 밖에 없더라고요. 결국 50여 명이 1개 차량에 타고 퍼레이드를 했죠. 본의 아니게 단독 퍼레이드가 됐어요.”

50여 명이었던 참가자는 지난해 기준 5만여 명으로 늘었다. 동성애 반대 단체의 비난과 선정성 논란에도 18년 동안 꾸준히 규모를 키워왔다. 이번 퀴어축제에는 총 101개의 부스가 운영된다. 퍼레이드에는 군인권센터를 비롯해 9개의 차량이 대규모 행진을 벌인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강명진(38)씨. [강명진씨 제공]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강명진(38)씨. [강명진씨 제공]

“시간이 지나고 행사 규모가 커지면서 참여자 분들의 표정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느껴요. 예전에는 나의 정체성이 드러날까봐 불안했다면, 지금은 해방감과 자긍심을 느끼는 거죠. 나를 사회에 드러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열망과 같은 시민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가 표출된 거라고 봐요.”

13일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건물 정문 바로 위에 가로로 긴 모양의 무지개색 깃발이 걸려 있다.   주한 미대사관 건물에 무지개 깃발이 걸린 것은 처음이다. [연합뉴스]

13일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건물 정문 바로 위에 가로로 긴 모양의 무지개색 깃발이 걸려 있다. 주한 미대사관 건물에 무지개 깃발이 걸린 것은 처음이다. [연합뉴스]

이번 퀴어축제엔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의 국가기관 최초로 참여한다. 인권위 관계자는 “성 소수자가 우리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편견을 해소하는데 인권위도 동참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강 위원장은 “그동안 인권위가 이름에 걸맞는 역할을 해왔는지는 짚어봐야 한다. 이번 축제 참여를 계기로 인권위가 참여자들의 목소리에 더 많이 귀기울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퀴어축제엔 독일ㆍ영국ㆍ캐나다 등 13개국 대사관도 행사 당일 부스를 운영하며 참여할 예정이다. 미 대사관은 따로 부스를 차리지 않는 대신 행사를 하루 앞둔 13일 대사관 건물에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걸었다. 주한 미 대사관이 무지개 깃발을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 대사관 관계자는 “미 국무부는 성소수자들의 기본적인 자유와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