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강남 한복판서 버스 대고 어찌 쉬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11일 오전 서울 강남역 6번 출구 인근 광역버스 정류장에 파란색의 M버스(5422번)가 정차했다. 승객이 내리고 줄지어 버스를 기다리던 승객이 탑승하는 데 걸린 시간은 45초. 이 버스는 경기도 수원 영통구청과 서울 강남역을 오간다.

편도 운행 뒤 10분 휴식 규정 #기사들 쉴 공간 없어 사문화

“편도 운행을 마쳤으니 좀 쉬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전승선(54) 기사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 버스를 대놓고 쉴 곳이 어디 있느냐. 그래서 손님이 다 타면 바로 출발한다”고 답했다. 한 버스는 차를 똑바로 정차시킬 시간도 부족했는지 정류장에 비스듬하게 차를 세운 뒤 승객을 태우자마자 곧바로 출발했다. 한 시간가량 강남역이 회차지인 M버스와 G버스 등 광역버스 30대의 평균 정차 시간을 재보니 32초였다.

경기도 안산에서 출발해 강남역에 왔다는 또 다른 광역버스 기사는 “법에서는 2시간 운전한 뒤 15분 쉬라고 돼 있다는데 운행 중간에 쉴 곳이 없다”며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4시간 이상을 연속해서 운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지난해 봉평터널 버스 참사 등 버스로 인한 대형사고가 잇따르자 정부는 버스 운전사의 의무 휴식시간을 법으로 정해 올 2월 말부터 시행하고 있다. 지난 9일 경부고속도로 7중 추돌 사고를 낸 M버스와 같은 광역버스는 1회 운행(편도 기준) 종료 후 10분을 쉬게 하고, 만약 1회 운행시간이 2시간이 넘을 때는 15분간 쉰 다음 버스를 운행토록 했다. 하지만 정작 쉴 곳이 없어 법 규정이 사문화되고 있는 것이다.

광역버스는 대도시와 대도시를 오가는 버스다. 수도권의 경우 경기도가 허가를 내준 G버스와 국토교통부가 허가를 내준 M버스 등이 있다. 경기도에 따르면 서울~경기를 오가는 광역버스는 모두 163개 노선 2132대다.

버스회차 지점서 기사 교대 등 대안 필요

광역버스는 복잡한 시내 구간을 통과한 후 고속도로를 거쳐 다시 도심 한복판으로 들어오는 노선을 반복 운행하기 때문에 운전사의 피로도가 높다. 하지만 경기도에서 서울로 오는 노선의 경우 서울 지역 회차 지점이 서울역·강남역·사당역 등 혼잡한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회차 지점에서 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1회 운행 종료 후 10분을 쉬게 돼 있는 법은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국토부가 경부고속도로 추돌사고를 낸 M5532번 버스의 디지털운행기록계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버스는 오산의 차고지에서만 쉬었을 뿐 서울 목적지인 사당역에서는 한 번도 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운행시간이 2시간을 넘을 때 15분 쉬게 돼 있는 법도 광역버스 운전사에게는 ‘배부른 소리’다. 수원터미널과 강남역을 오가는 G3007번 버스 기사는 “빨리 운전해도 평일 왕복에 2시간 반 이상 걸리고 주말에 경부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가 막히면 3시간이 넘기도 한다”며 “운행시간이 2시간이 넘었다 해도 버스전용차로 중간에서 쉴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광역버스 기사는 “고속도로에서 시간이 지체될 경우 배차 간격을 맞추기 위해 시내에 들어와서는 신호 위반 등을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운전자의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휴식 공간 확보 등 인프라를 확대해야 한다”며 “편도 운행시간이 긴 출퇴근 시간이나 주말에는 회차 지점에서 운전기사를 교대하는 등의 대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석환 국토부 대중교통과장은 “안전을 위해 주요 광역버스 회차 지점에 공용 휴게시설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함종선 기자 jsh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