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통행세 대신 투명한 로열티 받는 ‘프랜차이즈 모델’ 만들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2면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신 모(62) 씨는 10년 전 무역회사에서 퇴직한 후 줄곧 같은 자리에서 장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간 업종은 프랜차이즈 퓨전 맥줏집, 벌집 삼겹살, 그리고 비 프랜차이즈 돼지고기 구이집으로 바꿨다. 프랜차이즈를 창업하면 어느 정도 장사가 잘되다가도 비슷한 가게가 옆에 생기거나 본사가 홍보를 줄이면 장사가 잘되지 않았다. 가게 문을 닫고 싶어도 권리금이 고스란히 빚이라 그러기도 어려웠다.

생존 힘든 프랜차이즈 정글 #하루 평균 4개 창업, 3곳은 폐업 #브랜드 5200개 난립 전문성 부족 #조금 장사 잘되면 유사 매장 쏟아져 #협동조합 기반으로 한 가맹점 등 #최근 ‘착한 프랜차이즈’ 등장도

결국 신 씨는 프랜차이즈가 아닌 식당을 운영하기로 했다. 신 씨는 “내가 했던 프랜차이즈는 결국 모두 폐업했더라”며 “직접 장을 보고 식재료를 준비하려니 하루 평균 12시간을 넘게 고되게 일하고 있지만, 본사에 매여서 써야 했던 지출이 줄었고 눈치 보지 않으니 속도 편하다”고 말했다. 국내 프랜차이즈 시장은 ‘본사 갑질’이 아니어도 3년 이상 가게를 유지하기 어려운 정글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771개의 새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쏟아졌다. 그사이 폐업한 프랜차이즈는 598개다. 하루 평균 4개의 새 프랜차이즈가 생기고 3개가 문을 닫았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소비자 정의센터 팀장은 “현재 5200개가 넘는 프랜차이즈가 있는데 그만큼 전문성 없이 부실한 프랜차이즈가 많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창업을 부추기는 컨설팅 업체도 ‘프랜차이즈 난립’의 이유로 꼽힌다. 이들은 대개 ‘맛집’으로 소문난 음식점을 찾아가 프랜차이즈 사업을 권하고 사업자 등록부터 가맹점 모집까지 지원한 후 일정액 수수료를 받는다.

순식간에 쏟아지는 ‘미 투(Me too) 프랜차이즈’에 업계 전체가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설빙’은 2014년 우유 얼음을 갈아 만든 ‘눈꽃 빙수’로 인기를 끌어 1년 새 매장이 500개 가까이 늘었다. 그러자 다음해 비슷한 메뉴를 내세운 백설공주, 위키드 스노우 등이 쏟아졌다.

작은 공간에서 싼 값에 맥주를 즐기는 ‘스몰비어’로 인기몰이를 한 ‘봉구비어’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상구비어, 용구비어, 춘자비어 등 비슷한 이름을 내건 매장이 1년 새 1000여개 가까이 생겼기 때문이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이런 ‘미투 창업’으로 원조 브랜드까지 타격을 입는 악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본사의 갑질이 없고, 가맹사업자는 웃으며 일한다는 ‘착한 프랜차이즈’를 표방하고 나선 프랜차이즈들도 있다. 10년 전 인천 지역의 빵집을 중심으로 구성된 까레몽협동조합. 이곳은 최근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연말까지 열 군데 이상 가맹점주를 모집한다는 계획이다.

가맹점주가 부담하는 초기 비용은 조합 가입 비(250만원)가 전부다. 로열티는 따로 받지 않는다. 조합비로는 한 달간 제빵 교육을 해준다. 가게 임차나 인테리어는 가맹점주가 알아서 한다. 공동 공장에서 만든 반죽을 구매하는데, 이익의 일부를 조합원에게 배당한다. 이익이 커질수록 배당률도 올라간다.

협동조합 형태가 아닌 기업형 프랜차이즈 중에서도 로열티가 없는 ‘착한 프랜차이즈’를 표방하는 곳이 최근 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마냥 착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지난해 1월 법인을 설립한 뒤 현재 92개 가맹점을 확보한 A 수제 맥줏집은 로열티를 받지 않는다. 본사에 내야 하는 비용은 33㎡ (10평) 점포 기준 약 7000만원이라고 안내한다.

하지만 실제 창업 비용은 2~5배이 더 든다. 본부에 최종 비용을 묻자 ‘1억5000만원에서 4억원은 각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논현동에 33㎡ 짜리 점포를 낼 경우 최소 2억원, 입지가 좋은 곳은 4억원까지는 든다는 것이다. 이 업체가 공정위에 밝힌 서울 점포의 연평균 매출액은 3억840만원이다. 투자 비용을 회수하려면 2~4년은 걸린다는 계산이다. 프랜차이즈 점포가 3년 이내 폐점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감안하면 모험이다.

착한 프랜차이즈보다 중요한 것은 ‘로열티를 받는 정상적인 프랜차이즈 모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12년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45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로열티를 받는 곳은 36.2%에 불과했다. 이러다 보니 수익은 다른데서 벌충한다. 악명 높은 ‘치즈 통행세’ 같은 본사가 공급하는 물류마진이다. 한국프랜차이즈경영학회 회장인 이용기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맹본부와 가맹점주가 철학과 가치관이 맞는 경우에 함께 가는 게 정상적이고, 그 약속으로서 정당하게 지급하는 것이 ‘로열티’가 돼야 맞다”고 말했다.

이는 업계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잘되는 곳도 영업이익이 기껏해야 10%를 넘지 않는다”면서 “이러다보니 가맹점주를 최대한 많이 늘려서 물류 비용을 키우기 위해 ‘로열티가 없다’, ‘고수익 보장’ 등으로 가맹점주 모집에만 올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강병오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 겸임교수는 “미스터피자나 호식이두마리치킨처럼 범법 행위는 마땅히 처벌해야 하지만 프랜차이즈 산업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프랜차이즈 모델은 자영업자들의 실패를 줄이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로열티를 근간으로 물류비용 마진을 최소화하는 미국식 모델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주영·최현주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