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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법에선 쉬라는데…쉴 공간 없는 광역버스 기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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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역 정류장에 정차한 M5422번 광역버스에서 승객이 내리고 있다. 함종선 기자

서울 강남역 정류장에 정차한 M5422번 광역버스에서 승객이 내리고 있다. 함종선 기자

 11일 오전 서울 강남역 6번 출구 인근 광역버스 정류장에 파란색의 M버스(5422번)가 정차했다. 승객이 내리고 줄지어 버스를 기다리던 승객이 탑승하는 데 걸린 시간은 45초. 이 버스는 경기도 수원 영통구청과 서울 강남역을 오간다.

광역버스, 1회 편도 운행시 10분 휴식토록 규정 #강남역,사당역 등 혼잡 심해 쉴 공간 아예 없어 #기사들 "쉬기는 커녕 승객 태우고 떠나기도 바빠" #2시간 운행후 15분 의무휴식시간도 유명무실 #휴식 공간 확보 등 안전 운전 인프라 확충 시급 #국토부 "회차지점 공용휴게시설 설치 검토"

 “편도 운행을 마쳤으니 좀 쉬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전승선(54)기사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 버스를 대놓고 쉴 곳이 어디 있느냐. 그래서 손님이 다 타면 바로 출발한다”고 답했다. 한 버스는 차를 똑바로 정차시킬 시간도 부족했는지 정류장에 비스듬하게 차를 세운 뒤 승객을 태우자마자 곧바로 출발했다. 한 시간가량 강남역이 회차지인 M버스와 G버스 등 광역버스 30대의 평균 정차 시간을 재보니 32초였다.

올 2월 정부는 버스운전자의 피로도를 줄이겠다며 1회 운행(편도) 후 10분 휴식시간을 갖는 법을 만들었지만 정작 버스기사들이 쉴 곳이 없어 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함종선 기자

올 2월 정부는 버스운전자의 피로도를 줄이겠다며 1회 운행(편도) 후 10분 휴식시간을 갖는 법을 만들었지만 정작 버스기사들이 쉴 곳이 없어 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함종선 기자

 경기도 안산에서 출발해 강남역에 왔다는 또 다른 광역버스 기사는 “법에서는 2시간 운전한 뒤 15분 쉬라고 돼 있다는데 운행 중간에 쉴 곳이 없다”며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4시간 이상을 연속해서 운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봉평터널 버스 참사 등 버스로 인한 대형사고가 잇따르자 정부는 버스 운전사의 의무 휴식시간을 법으로 정해 올 2월 말부터 시행하고 있다. 지난 9일 경부고속도로 7중 추돌 사고를 낸 M버스와 같은 광역버스는 1회 운행(편도기준) 종료 후 10분을 쉬게 하고, 만약 1회 운행시간이 2시간이 넘을 때는 15분간 쉰 다음 버스를 운행토록 했다. 하지만 정작 쉴 곳이 없어 법 규정이 사문화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역에서 G3000버스를 기다리던 승객들이 버스에 승차하고 있다. 함종선 기자 

서울 강남역에서 G3000버스를 기다리던 승객들이 버스에 승차하고 있다. 함종선 기자 

  광역버스는 대도시와 대도시를 오가는 버스다. 수도권의 경우 경기도가 허가를 내준 G버스와 국토교통부가 허가를 내준 M버스 등이 있다. M버스는 G버스 등 다른 광역버스에 비해 정차하는 역이 적어 광역급행버스로도 불린다. 경기도에 따르면 서울~경기를 오가는 광역버스는 모두 163개 노선 2132대다.

 광역버스는 복잡한 시내 구간을 통과한 후 고속도로를 거쳐 다시 도심 한복판으로 들어오는 노선을 반복 운행하기 때문에 운전자의 피로도가 높다. 하지만 경기도에서 서울로 오는 노선의 경우 서울지역 회차 지점이 서울역ㆍ강남역ㆍ사당역 등 혼잡한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회차 지점에서 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울 강남역 버스정류장에는 파란색의 M광역버스와 빨간색의 G광역버스가 줄지어 들어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버스가 늘어선 모습이 마치 열차같다고 해서 '버스 트레인'이라는 말이 붙여질 정도다. 함종선 기자

서울 강남역 버스정류장에는 파란색의 M광역버스와 빨간색의 G광역버스가 줄지어 들어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버스가 늘어선 모습이 마치 열차같다고 해서 '버스 트레인'이라는 말이 붙여질 정도다. 함종선 기자

 이때문에 1회 운행 종료 후 10분을 쉬게 돼 있는 법은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경부고속도로 추돌사고를 낸 M5532번 버스의 디지털운행기록계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버스는 오산의 차고지에서만 쉬었을 뿐 서울 목적지인 사당역에서는 한 번도 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운행시간이 2시간을 넘을 때 15분 쉬게 돼 있는 법도 광역버스 운전자에게는 ‘배부른 소리’다. 수원터미널과 서울 강남역을 오가는 G3007번 버스 기사는 “빨리 운전해도 평일 왕복에 2시간 반 이상 걸리고, 주말에 경부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가 막히면 3시간이 넘기도 한다”며 “운행시간이 2시간이 넘었다 해도 버스전용차로 중간에서 쉴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광역버스 기사는 “고속도로에서 시간이 지체될 경우 배차간격을 맞추기 위해 시내에 들어와서는 신호위반 등을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한국교통연구원 임재경 연구위원은 “운전자의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휴식 공간 확보 등 인프라를 확대해야 한다"며 "편도 운행시간이 긴 출퇴근 시간이나 주말에는 회차지점에서 운전기사를 교대하는 등의 대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안석환 대중교통과장은 “안전을 위해 주요 광역버스 회차 지점에 공용 휴게시설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함종선 기자 j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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