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트럭 자동제동장치 의무화 “돈 많이 든다”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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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만원. 지난 9일 경부고속도로 광역버스의 졸음운전으로 50대 부부가 사망하고 16명이 다친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을 첨단 안전 기술 ‘자동긴급제동장치(AEB)’의 장착 비용이다.

안전장치 도입도 제대로 안 돼 #작년 발의된 법엔 포함됐지만 #이후 수정 과정 거치며 빠져 #“소중한 목숨 살릴 수 있다면 #취지대로 제도 엄격히 추진해야”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8월 대형 화물차와 버스에 ‘차로이탈경보장치(LDWS)’와 자동긴급제동장치 등을 의무적으로 장착하게 하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차로이탈경보장치는 자동차가 주행하는 차로를 운전자 의도와 무관하게 벗어날 경우 운전자에게 경고해 주는 장치다. 자동긴급제동장치는 주행 중 전방 충돌 위험상황이 발생하면 자동차 스스로 감속 또는 정지하는 첨단 안전장치다.

임 의원의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원래 모습 그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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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름이 바뀌었다. 장착 의무화를 자동차관리법이 아니라 ‘교통안전법’에 따라 규정하는 게 맞다고 판단해 ‘교통안전법 개정안’으로 바꿔 발의했다.

더 중요한 점은 이렇게 법이 모양을 바꾸는 동안 차로이탈경보장치 하나만 의무 장착하면 되는 것으로 내용까지 바뀌었다는 것이다. 예산과 자동차 소유자의 비용 부담 때문이었다.

임 의원실 관계자는 “차로이탈경보장치만 장착하면 대당 50만원 선에서 할 수 있고, 자동긴급제동장치까지 함께 의무화하면 수백만원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원금을 주더라도 두 가지를 다 의무화하면 소유주들의 부담이 너무 클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차로이탈경보장치만 먼저 장착하게 하고 추후에 시행령 등을 통해 다른 기술도 의무화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행령을 바꾸는 정부 역시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개정안의 내용을 그대로 따르는 수준에 그쳤다. 역시나 예산이 문제였다. 지난해 100대를 대상으로 연구사업을 진행하고 1만5000대를 대상으로 시범사업 등을 거친 결과 다른 첨단 기술까지 함께 장착하려면 예산 부담이 너무 클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결국 국토교통부가 지난 4월 입법 예고하고 18일부터 시행될 예정인 ‘교통안전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은 차로이탈경보장치만 의무적으로 장착하도록 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새로 출고되는 화물차와 버스는 내년부터, 기존 운행 중인 차는 2019년 말까지이며 비용은 정부와 지자체가 각각 40%를 지원하고 차량 소유자가 20%를 부담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애초 기대만큼 실효를 내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최재성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차량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자동 감속되는 등의 첨단 기술 장비를 갖추면 당연히 효과가 훨씬 클 것이다. 9일 일어난 사고만 해도 뒤에서 그대로 앞차를 덮친 경우라 차로이탈경보장치로는 막을 수 없었을지 몰라도 자동제동 기술까지 함께 있었다면 사고를 피했을 가능성이 크다. 현실적으로 화물 운전자가 부담해야 될 금액이 크고 예산이 너무 많이 들어 어쩔 수 없었겠지만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네덜란드·이스라엘 등 첨단 운전보조장치 의무 장착을 제도화한 국가에서는 차로이탈 경보장치와 자동긴급제동장치 등을 함께 장착하도록 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명장 1호’인 박병일 명장은 “업체마다 다르지만 현재 400만원 초반 정도면 관련 기술 대부분을 장착할 수 있다. 소중한 생명에 비하면 엄청난 돈도 아닌데 취지대로 더 엄격하게 추진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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